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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만복사터 석인상(萬福寺址石人像).전북 남원 본문

☆~ 풍경소리/전 북

남원 만복사터 석인상(萬福寺址石人像).전북 남원

푸른새벽* 2007. 3. 30. 23:00

 

 

 

 

 

 

 

만복사터 석인상(萬福寺址石人像)


노기를 띈 표정이 역력한 석인상은 현재 머리 부분만 땅 위로 드러나 있는데
1965년 발굴조사에 따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가 모두3.75m에 달하는 지주형 인왕상으로
당간지주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강암으로 된 사각기둥의 세 면에 석인상이 조각되어 있고,나머지 한 면은 조각없이 밋밋하여
머리에서 1.22m 내려온 곳과 3.18m 내려온 곳에 당간지주의 천공(穿孔)과 같은 깊이 24cm,
폭 13cm짜리 구멍이 뚫려 있다
땅 위로 드러난 머리 부분은 정수리에 육계와 같은 둥근 머리채가 있고
귀는 길고 눈썹은 치켜올라가고 눈망울이 튀어나왔다
입은 벌리고 있는데 화를 내고 있는 표정이며,땅속에 묻힌 몸은 반라(半裸)이다


구부린 팔목과 팔뚝에 두 줄이 그러져 있고,허리에 옷주름이 묶여 있으며,
발은 옷자락에 가려진 채 간략히 처리되었다
발 밑에는 몸체와 한돌인 기초석 부분이 있으나 그 크기는 알 수 없다


이 석인상을 당간지주와 같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게 하는 이유가 한가지 더 있다
이 석인상과 짝을 이루는 석인상이 절터에서 발견된 것이다
크기나 모양새가 같고,석재가 짧았던지 목 부분에서 돌기를 만들어 몸에 끼워 맞추었다
그리고 몸체의 두 구멍 중 아래쪽 구멍 바로 밑이 절단되어 있는데,
도로공사를 하던 중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만복사지 석인상(萬福寺址石人像)


지정사항 없음
전북 남원시 왕정동 481번지

 
만복사지 입구 도로변, 당간지주 남쪽에 남면한 한 쌍의 석상으로서 본래는 약 1m 정도 두부만 노출되고, 한쪽은 두부가 절단된 채 방

치되었던 것인데, 1965년 5월, 지방인이 매몰부를 발굴함으로써 전모가 나타났다.


두 석상은 화강암으로 3면을 조각한 것인데 기부는 별석의 기대는 없고, 방주형으로 다듬어 지중에 꽂혀 있다. 정부에서 족단까지의

길이는 3.75m, 상대하는 내측면은 0.45m의 간격을 두어 간공이 뚫려 있어 이가 당간지주였음을 알 수 있다 석인상은 대체로 좌우대칭

으로 두상에는 육계가 있으며, 안면은 안구가 돌출한 분노지상을 나타내었고, 동측지주는 입을 벌리고 서측지주는 입을 다물고 있어

아우상을 대조시키고 있다.


상반신은 반라로서 전면의 팔은 구부렸고, 상박부와 두부에 이중륜을 두르고 있다. 군의는 허리에서 묶어 이하는 수직으로 드리운 의

습에 가리어 족부는 간략히 처리하면서 방주형 기대에 접한다. 동측상은 석재가 짧았던지 경부에 홈을 파고, 따로 조각된 두부의 돌출

부를 삽입토록 되었고 하공우위에서 절단되었다. 석상의 양상은 인왕상의 아우일쌍임을 알 수 있는데, 당간지주에 이러한 석인상을 새

긴 예는 유일한 것이다. 만복사가 고려 문종대 창건이므로, 이 석인지주도 창건당시의 작품으로 보인다.


만복사지는 폐사후 심한 토사의 퇴적으로 당시 지표가 깊숙히 지하에 묻혀 있으므로 오히려 유구가 잘 보존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석인상은 지상에 약 1m, 두부만 노출되어 있으므로, 적어도 2.75m가 돋구어져 묻혀 있는 셈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