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부여 무량사극락전(無量寺極樂殿).충남 부여 본문

☆~ 풍경소리/충 남

부여 무량사극락전(無量寺極樂殿).충남 부여

푸른새벽* 2007. 11. 24. 21:24

 

 

 

 

 

 

 

 

 

 

 

 

 

 

 
무량사극락전(無量寺極樂殿)


무량사의 본전에 걸맞게 전각 명칭이 극락전이다
곧 하나같이 다 이 절집이 극락세계임을 뜻하는 이름들이다
무량사는 임진왜란 때 크게 불탄 뒤 인조 때에 중창하였으니 이 극락전도 그때에 지은 것으로
족선 중기 건축의 장중한 맛을 잘 드러내 주어 보물 제356호로 지정되었다


먼저 겉에서 보기에 2층집인 점이 우리 나라 여느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을 하고 있어 독특하다
이러한 예는 오층목탑 형식인 법주사 팔상전이나 3층 전각인 금산사 미륵전 말고는
화엄사 각황전 등에서나 볼 수 있으며 가까이에는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이 있다
이처럼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 집들 모두가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까지 뚫린 통층(通層)인 점이 공통된다
따라서 이런 2층을 올린 것은 기능보다는 위엄과 장엄에 그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층은 앞에서 바라보이는 5칸,옆에서는 4칸이며 위층은 정면이 3칸,옆면이 2칸으로 되어 있다
아래층 문살은 가운데가 네 짝이고 점차 두 짝, 한 짝씩으로 줄었다
칸 살이 넓어 전체적으로 집이 평활해 보인다
정면은 모두 창살문을 달았으며
2층 정면도 지금은 판자벽이지만 원래는 살문을 달아 집안에 빛이 잘 들어오도록 했던 듯하다
다른 벽들은 모두 흙벽(土壁)이 아니고 나무판자를 대서 만든 판벽(板壁)이다
이런 점은 평지가 아닌 산간에서나 볼 수 있는 독특한 보기이다


불전 안에는 가운데에 아미타불(5.4m)이,양쪽에 관세음보살(4.8m)과 대세지보살(4.8m)이 있는데
이 아미타삼존불은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불로서는 동양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어깨는 당당하나 상호가 사실성이 없이 평판적이며 옷주름 등은 도식성을 보여
단순해져가는 조선 후기의 양식을 보여 준다
본존불의 손이 매우 큰데 한 손은 올리고 한 손은 무릎에 내린 채 양쪽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어
아미타구품 중에서 상품중생인을 나타내고 있다
보살상은 전대에 견주어 영락장식은 줄어든 편이나
보관이 매우 화려해지는 모습이 또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성을 내보이고 있다
불상의 복장 유물에서 발원문이 나와 이 불상이 1633년에 흙으로 빚은 아미타불임이 분명히 밝혀졌으므로
연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예가 되었으며,
아울러 극락전 건물도 같은 시기에 지었을 것으로 짐작하게 되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부여 무량사 극락전(扶餘 無量寺 極樂殿)


보물 제356호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16 무량사 


무량사는 신라 말에 범일이 세워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으나 자세한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신라말 고승 무염대사가 일시 머물렀고, 고려시대에 크게 다시 지었으며, 김시습이 이 절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치않는 2층 불전으로 무량사의 중심 건물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이지만 내부에서는 아래·위층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트여 있다. 아래층 평면은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기둥 사이를 나누어 놓았는데 기둥은 매우 높은 것을 사용하였다. 위층은 아래층에 세운 높은기둥이 그대로 연장되어 4면의 벽면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는 그 얼마되지 않는 낮은 벽면에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창문을 설치했었는데 지금은 나무판 벽으로 막아놓았다.


아미타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는 이 불전은 조선 중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낸 불교 건축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수한 건물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