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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양호실도서관 본문
플란다스의 개,인어공주,재크와 콩나무,성냥팔이 소녀,미운오리 새끼,백조왕자,장화신은 고양이...
아주아주 오래 전 ,강원도 바닷가 작은 마을에 살던 갈래머리 땋은 계집아이가 학교에 가려면 바닷물이 뒷담장에 닿는 집에서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의어판장을 지나 극장이 있고,재재소가 있고 ,약국이 있는 삼거리를 돌아 오롯한 황토길을 따라 시오리 길을 걸어가야 했다
교사로 쓰는 단층건물 세 동과 온실과 숙직실 그리고 양호실이 전부였던,번잡한 읍내와는 거리가 먼 아주 작은 산골초등학교
그 작은 고장에는 초등학교가 셋
두 곳의 초등학교는 읍내에 있었는데 두 곳 모두 콘크리트 2층 건물에 규모도 컸고 학생수도 산골 학교보다는 많았던 것 같다
그 두 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이 읍내에 살았으니 바닷가와 산골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
입성도 먹거리도.
그렇지만 학교대항 체육대회나 사생대회,주산대회,백일장 같은 행사가 있을 때면 항시 트로피는 산골학교 몫이었을 만큼
학생도 선생님들도 열성에는 읍내학교에 뒤지지 않았었다
그런 산골학교
작은 교문을 지나 한참을 걸으면 소담스런 연꽃이 가득한 연못이 있었고 걸어걸어 올라가 마주하는 운동장 양옆으로 늘어선 키큰 포플라 나무와 반짝이는 은백양나무들...
선생님들이 사용하시던 숙직실 아궁이에 걸린 커다란 무쇠솥으로 하루에 한 번씩 급식을 위하여 따끈따끈 부드러운 옥수수빵을 쪄냈고,학생들 마실물을 끓였었다
사방 모두 천장까지 유리로 된 싸아하고 비리한 냄새 가득했던 온실.긴 검정 고무장화를 신고 사철 거름지게를 지고 다니던 온실 담당 선생님은 학생들에게는 이쁜 꽃씨나 다알리아나,칸나의 구근을 나눠주셨었다
소독약 냄새 매캐한 볕바른 곳에 위치한 양호실.하얀 격자살문의 유리창에 하얀 포플린 커튼이 드리워진 양호실은 간단한 구급약만 갖춘 흰 약장 하나 뿐이었고 양호실의 주인은 벽면 가득 채운 책들이었다 .양호실과 도서관을 함께 사용했으니 양호선생님이 곧 도서관 사서 였다
부스스한 모습의 숙직실 담당 선생님이나 항시 고무장화를 신고 다니는 온실담당 선생님과는 달리 머리 묶은 이쁜 양호선생님은 깔끔하고 까다롭고 무서웠다.양호실에서 책을 빌리려면 그 절차가 이만저만 까다로운 것이 아니어서 어쩌다 담임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책을 빌리려 가도
어린 마음에 죄도 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식은 땀을 흘리며 주눅이 들고는 했었다 .그렇지만 책 냄새는 좋았다
힐끗 쳐다보기만해도 책이 가득 꽂혀 있는 책장은 설레임 그것이었다
공부하는데 꼭 필요한 수련장이나 전과를 사려해도 어머니를 며칠은 졸라야 했던 그 시절 동화책을 산다는 것은 꿈도 못꿀 일이었으니
보고 싶은 책이 그득한 양호실은 내게 그야말로 꿈의 장소였던 것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
일찌감치 담임선생님께 청소검사를 받고 집에 가려 수돗가에서 손을 씻는데 양호선생님이 손짓을 하며 부르는 것이 아닌가
괜시리 가슴이 쿵쾅거렸지만 선생님이 부르시니 큰 소리로 대답하고 달려갔다
"안철자 선생님 반이지?니네 담임선생님께 말씀 드렸으니 매주 토요일 수업 끝나고 양호실 청소 좀 하렴 "
......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하고 양호실을 나왔다
그 때부터 매주 토요일엔 양호실을 청소했다
왜 내가 양호실을 청소해야하는지도 모르고 선생님이 시키니까 열심히 청소는 했다.그렇지만 싫지는 않았다
매캐한 소독약 냄새와 어쩌면 곰팡이냄새 같기도 한 책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으니까.
양호실 청소를 세 번째 하던 날 청소를 마치고 선생님께 인사하고 양호실을 나오려는데
"수고했다~ 다음부터 청소 끝나면 이곳에 있는 책은 맘대로 봐도 괜찮아~"
저 높은 곳 하늘나라에서 들리는 천사의 음성이 그리도 곱고 부드러울까 싶은 웃음 띈 양호선생님의 말씀...
그 후 매주 토요일엔 양호실청소와 또 즐거운 책읽기로 나의 귀가시간은 어머니의 걱정을 들을 정도였다
그 때가 초등학교 4학년 봄이었고 5학년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서울로 전학을 할 때까지 양호실 청소를 계속했고 내 귀가는 그렇게 늦어졌다
볕바른 창가 하얀 포플린 커튼과 부드러운 햇살과 그 토요일 오후의 적막 .나는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땅거미 내려 앉은 텅 빈 운동장을 걸어나오는 나는 인어공주가 되었고,네로가 되었고,재크가 되어 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책읽기를 너무도 좋아하는 나를 배려해 담임선생님께서 양호선생님께 부탁을 했었고
양호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의 정서를 생각해서 청소라는 숙제를 만들었던 것이었다
그때 읽었던 동화들...
지금이야 근사하고 단단한 표지와 사실에 가까운 색감과 정연하게 번역된 동화책들이 많고도 많지만
그때의 동화책들은 유치한 색감에 일본판을 번역한 것이라 앞뒤 문장의 연결도 어설펐던 것이 태반이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그 어스름 저물녘까지 읽었던 '플란더스의 개'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질 듯하고
'인어공주'를 생각하면 내 다리가 저릴만큼 그 때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파도가 얼어붙은 겨울바다와 사립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쌓였던 눈과
소독약냄새 나는 양호실의 그 많던 책들과의 만남으로 내 유년 시절 기억의 창고가 넘치고도 남는다
중학교 때 앙드레지드와 헤밍웨이와 까뮈를 알았고 고등학교 1학년 까지 한국근대문학을 거의 다 읽었다
결혼을 하고,아이를 낳고,또 이만큼의 세월을 사는동안 어느하루 책을 놓은적은 없다
한동안은 김승옥,박영한, 이외수, 한수산 그리고 이문열과 김주영과 김원일에 열광했었고 또 헤르만 헤세와 생텍쥐베리와 시오노나나미...
그리고 8년 전부터 시작한 답사에 관한 책과 인문서들,근래에 읽기 시작한 나무와 들꽃에 관한 책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희열과 감흥은 그 예전의 것에 미치지 못한다
나는 책을 빌려서 읽지 않는다.내가 읽고 싶은 책은 값을 치르고 구입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것은 유년시절 빌려서라도 읽을 수 있으면 행복했던 때의 허기짐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지금도 생각한다
소독약냄새와 양호실 벽면을 가득채웠던 책들과 하얀색 포플린 커튼과 플란다스의 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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