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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청룡사 돌아보기 본문

답사.여행 후기

안성 청룡사 돌아보기

푸른새벽* 2008. 1. 23. 12:18

*서운산은 해발 547m로 나지막하다

높은 산은 아니나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아름다웠다

넓지 않은 주차장에서 개울을 건너 보이는 절집입구

 

 

 

 

*'서운산 청룡사'의 현판이 걸린 허름한 문간채를 들어서면

찰주가 받치고 있는 날아갈 듯한 팔작지붕이지만 소박하고 아담한 대웅전을 만난다  

 

 

 

 

*춥지 않은 겨울이라 절집마당이 질퍽거렸다

나란히나란히 디딤돌이 깔려있다 

 

 

 

 

 

*나란히나란히 놓인 디딤돌의 亞자 무늬

편안한 걸음을 위해 디딤돌을 놓은이의 마음씀이 이렇듯 정갈하리라 

 

 

 

 

 

* 청룡사 범종

조선 현종 15년(1674)에 조성된 높이 128cm의 이 종은 무게만도 800근이라 한다

 

 

 

 

 

*엄청난 무게 때문일게다

종을 매단 종의 고리가 대단히 길다

다른 절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긴 고리이다

 

 

 

 

 

*범종각안에 있는 법고

법고 가장자리를 빙돌린 검은색 무늬가 이채롭다 

 

 

 

 

*청룡사 3층석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룡사 대웅전 앞에는 괘불대 한쌍이 있는데

왼쪽 괘불대의 한쪽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얼핏보면 나무로 만든 것으로 착각할 만큼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듯 하다

분명 돌로 만든 것인데... 

 

 

 

 

 *청룡사 대웅전 어간의 살창

빛바랜 단청과 살창의 조화가 푸근하다

 

 

 

 

* 청룡사 대웅전의 측면

대웅전 정면의 곧고 바른 기둥과 달리 건물의 측면에는

굽은 나무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자연스러움이 돋보인다

연륜이 깊어 이리저리 등굽은 소나무를 그대로 옮겨와 가지만 툭툭 잘라내고

기둥을 삼은 것이 천연(天然)의 미감(美感)이다

부처의 섬김이 그리도 자연스럽고 대범했던 것일까...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 좌우보처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 모셔져 있다

제화갈라보살은 석가모니불의 전생 몸이라고 한다

흔히 선혜보살이라 부르는데,후에 연등불이 되리라는 수기를 받는다

청룡사 법당은 과거.현재.미래불을 나란히 한 자리에 모신 것이다 

 

 

 

 

*청룡사 대웅전 양쪽 추녀 끝에 있는 금강역사

칼을 들고 서 있는 금강역사의 모습은 청룡사가 아니고선 볼 수 없다

아마도 천왕문이나 금강문을 따로 세우지 않은 청룡사는

법당 추녀 끝에서 잡귀의 침입을 막고 부정을 다스리며 부처님을 외호토록 묘안을 짜낸 것이리라 

 

 

 

 

*청룡사 법당 밖의 단청

단청의 채색이 화려하다

연화문.태평화문.사판화.육판화 등 화려한 연꽃문양들이 가득 차 있다

 

 

 

 

*대웅전 내부 오른쪽 어두컴컴한 한 켠에 놓인 탁자의 조각

청룡사 대웅전 내부의 불단은

운룡을 조각한 기둥을 사자등 뒤에 세워 조성한 호화스럽고 장엄한 불단이 있다고 했는데

2008년 1월에 가 본 청룡사 대웅전의 불단은 그렇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고 살피다 만난 탁자의 조각

화려한 불단을 보지 못한 서운함을 달래주기에는 충분하였다 

 

 

 

 

*청룡사 대웅전 정면의 처마 밑으로 내달린 공포 장식

청.황.백련의 연봉오리를 쓴 것도 눈길을 끈다  

 

 

 

 

 

*청룡사 요사채에는 메주가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맑은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는 요사채의 기둥과 짚을 엮어 매달아 놓은 메주의 색이 같다~ㅎ

 

 

 

 

*요사채에 걸린 메주를 살펴보다가

문득 메주에 가려 미처 보지 못했던 청룡사 편액을 만났다

이럴땐 글씨를 볼 줄 모르는 내 무지함이 불편하다

아주 많~이... 

 

 

 

*청룡사를 돌아나와 계곡을 건너 예전 남사당패들이 모여 살았다던 청룡마을로 들어섰다

오롯한 오솔길을 꽤 걸어가면 만나는 바우덕이 사당

청룡사에서 관리한다고 했다  

 

 

 

 

*안성 남사당패를 이끌었던 여자 꼭두쇠 바우덕이 동상

바우덕이는 전국에서 그 이름을 떨쳤다

경복궁 중건 때 노역자들을 위로하고자 안성 사당패를 불러 걸판지게 돌이판을 벌였는데

특히 바우덕이의 노래와 춤,줄타기는 일품이어서 일꾼들이 넋을 잃고 빈 지게만 지고 다녔다고 한다

이에 대신들은 요망한 바우덕이를 처형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으나

대원군은 오히려 바우덕이를 칭찬하고 후하게 상을 내렸다고 한다

그후 바우덕이는

13년 동안 안성 사당패를 이끌며 악전고투를 하다가 거리에서 병을 얻어 죽었다고 한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서른이 채 되지 않았으니...

 

 

 

 

*이 곳이 청룡마을

남사당패 들이 모여 살았던 동네이리라

낮으막한 언덕 어딘가에 바우덕이의 무덤이 있다던데... 

 

 

 

 

 

*청룡사에서 바우덕이 사당을 들러보고 다시 돌아나오는 작은 삼거리 중앙에 자리한 청룡사 사적비

이런 碑 를 새겨놓은 이의 정성이 있었기에

후세에 발걸음하는 이들이 청룡사의 내력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청룡사 부도밭

청룡사 사적비에서 청룡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

자연석으로 근사하게 담을 둘러 쌓아 이곳이 청룡사의 부도밭임을 한 눈에 알게 해준다

조선시대 석종형 부도가 단연 많고, 그 이전 이후의 부도도 더러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