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安東 法興寺址 七層塼塔).경북 안동 본문

☆~ 풍경소리/경 북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安東 法興寺址 七層塼塔).경북 안동

푸른새벽* 2008. 3. 14. 00:36

 

 

 

 

 

 

 

 

 

 

 

 

 

 

 

안동 신세동 칠층전탑(安東新世洞七層塼塔)


중앙선 철길이 지나는 안동댐 옆에는 안동에서 가장 큰,
아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전탑이 서 있다
기차를 타고 지나면 얼핏 스쳐갈 따름이고,찻길로 찾아가자고 해도 길이 그리 쉽지는 않으며
안동역에서 안동댐 방향으로 쉬엄쉬엄 걸어서 찾아가는 편이 쉽고 운치도 있다


철길 옆으로 난 차도 안쪽으로 들어가면 기와지붕이 즐비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전탑을 볼 수 있다
전체 높이 17m에 이르는 이 전탑은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칠층탑이다
규모가 장대하고 상승감이 있으면서도 안정감이 있고 비례가 아름다워 국보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이 칠층전탑은 안동을 전탑의 고장이라고 부르게 하는 중심 역할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법흥사가 부의 동쪽에 있다고 되어 있고,
『영가지』의 지도에도 법흥사와 함께 표시가 되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전탑이 있는 자리와 일치한다
또 『영가지』에는 절의 규모가 세 칸만 남아 있다고 하였다
현재 있는 곳도 법흥동인데 '신세동 칠층전탑'으로 명명된 것은 1962년에 국보로 지정할 때
옆동네 명칭을 잘못 붙여서 그리 되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 말인 1381년에 중수되었고,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성종 18년인 1487년에 개축되었다
이 탑 위에 금동장식이 있는 것을 객사 소용물을 만드는데 쓰려고 거두었다는 기록이 『영가지』에 있다
그렇다면 이 탑은 원래 금동상륜부가 있는  화려한 탑이었을 듯 하다
아무리 불교를 중시하지 않았다해도 멀쩡한 금속장식을 소용물을 만드는 데 쓰려고 녹였다니
조선시대에 탑이 받았던 대접을 능히 짐작할 만하다


탑의 수난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는 바로 옆으로 중앙선 철로가 놓이게 되었으니,꼼짝없이 '기찻길 옆 칠층전탑'이 되고 말았다
기차가 옆으로 지나다니면서 끼치는 진동과 소음은 탑의 수명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 일제강점기에 탑을 대대적으로 보수 했는데
이때 기단부의 모양이 이상하게 되고 말았다
현재 이 탑의 단층 평면기단 위에는,
지표에 팔부신중상과 사천왕상상을 새 긴 판돌들이 면석을 이루고 있는데 네 면에 고루게 분포되지 않고
북면과 서면에 각6매씩 세우고 남면 가운데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그 위쪽으로 경사지게 시멘트를 발라 마감한 것으로 미루어
보수할 때 원형이 크게 손상된 것으로 짐작된다


탑을 멀리서 보면 지붕 부분의 기와가 드문드문 남아 있는 것이 보인다
기와와 벽돌 사이로는 더러 마른 풀이 듬성듬성 돋아나 있기도 해서 운치를 더하지만
한편으로는 쓸쓸한 느낌을 자아낸다
원래 이 전탑은 기와지붕을 얹고 맨 위에 화려한 금동상륜을 씌워 마치 갑옷과 투구를 다 갖춰 입은 듯한
늠름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데 지금은 투구도 벗겨지고 갑옷은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법흥사 전탑의 벽돌들은 더러 깨져내리는 모습도 보인다
바로 옆으로 중앙선 열차가 지나다니기 때문에
기차의 진동음에 늘 흔들리다보니 그 손상이 점점 심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일제강점기에 손상된 것은 기단 부분만이 아니라,
절터 전반이 기찻길이 되고 탑이 기차 진동에 노출된 것이 더 큰 손상이 될 듯하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安東 法興寺址 七層塼塔)


국보 제16호 
경북 안동시 법흥동 8-1 


법흥동에 세워져 있는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법흥사에 속해있던 탑으로 추정되나, 탑 주위로 민가와 철도가 들어서 있어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탑은 1단의 기단(基壇)위로 7층의 탑신(塔身)을 착실히 쌓아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면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8부중상(八部衆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세워놓았고, 기단 남쪽 면에는 계단을 설치하여 1층 몸돌에 만들어진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향하도록 하였다. 진한 회색의 무늬없는 벽돌로 쌓아 올린 탑신은 1층 몸돌에 감실을 마련하였고, 지붕돌은 위아래 모두 계단모양의 층단을 이루는 일반적인 전탑양식과는 달리, 윗면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보아 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의 윗면을 시멘트로 발라 놓아 아쉬움을 남기는 이 탑은 7층이나 되는 높은 층수에 높이 17m, 기단너비 7.75m의 거대한 탑임에도 매우 안정된 자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에 속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또한 지붕에 기와를 얹었던 자취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목탑을 모방하여 전탑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