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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전라병영성지(全羅兵營城址).전남 강진 본문

☆~ 풍경소리/전 남

강진 전라병영성지(全羅兵營城址).전남 강진

푸른새벽* 2009. 2. 24. 08:22

 

 

 

 

 

 

 

 

 

 

 

 

 

 

 

 

 

 

 

 

 

전라병영성지(全羅兵營城址)


사적 제397호
전남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병영이란 조선시대 지방군사 조직으로 이 유적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서남부 지역의 군사본부로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전라병영성지는 조선 태종 17년(1417)에 축성된 길이 1,060m 가량의 장방형 평지성으로 조선 효종 7년(1656)부터 현종 4년(1663)까지 표류중이던 네덜란드 선원 하멜 등 33명이 7년간 이 곳 성안에서 체류한 곳이다. 1894년 동학란 때 성내 전체 건물이 소실되었고, 1895년 해체되어 석축과 건물터만 남아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서남부 군사본부로서 큰 역할을 담당한 곳이다.


성벽은 병영초등학교 외곽 담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동, 북, 서 구간과 남측구간에 그 기저부가 잘 남아 있고, 남측일부 및 동남측 일부 구간은 민가, 관공서 건물 외곽담장으로 이용되고 있으나 석축과 기저부는 잘 남아 있다.


성곽시설로는 석축, 토축 외에 수구문 3개소, 옹성 7개소, 건물지, 조석등 석재와 25기의 비석(면사무소 내)이 잔존하며, 성내에는 병영초등학교(성내 북부)와 학교 관사, 민가 1동이 있고, 나머지 지역은 농경지로 경작중이며, 서측 및 남측 일부구간은 성벽을 개간하여 경작중인 곳도 있다.


동 병영성은 조선시대 전라도의 육군훈련 및 지휘부 기능을 담당했던 사령부가 있었던 곳으로 5개의 영과 53주 4성을 통할하던 군사요충지로서 국내 병영성 가운데 남해안 지방의 것으로는 보존상태가 좋은 유일한 것이다.


특히 서남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방비는 물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당하여 우리나라 서남부 군사본부로서 큰 역할을 다한 방어기지이자

육군 지휘부 기능을 담당하였으며,조선 효종 7년부터 현종 4년까지 7년간 네덜란드인 하멜을 비롯한 선원 33명이 체류하였다가 귀국한 후 저술한『하멜 표류기』를 통해 우리나라 정치, 문화, 풍속 등이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유서깊은 곳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