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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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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후기

함양여행. 장수사터.허삼둘가옥

푸른새벽* 2009. 4. 3. 22:35

 나에게 여행이라는 것은 답사여행이 전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어떤 곳을 가더라도 꼭 그곳에서 내 수첩에 메모해놓은 한 군데라도 살펴봐야 억울(?)하지 않다

그것은 볼 일이 있어 집을 떠나더라도 항시 혼자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는 것을

이번 1박2일의 여행에서 새삼 깨달았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일로 찾았던 진주라는 고장

그곳에서 막상 내 볼일은 두 어시간으로 족했다

그런데 내가 간절히 부탁해서 동행을 허락한 친구의 의견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지라

일부러라도 찾아보는 곳이  고향인데 고향언저리까지 갔는데

함양이 고향인 그 친구의 고향돌아보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할 경우에 들리게 되는 곳

인삼랜드휴게소

연못이 있고 의자가 있는 잘 가꾸어진 정원 때문이다

 

 




연못바닥의 아른아른한 조약돌과 그 물에 가지를 드리운 버들개지에 함뿍 봄이 물들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인 진주에서 내 볼일을 마치고 이제 남은 시간은 모두 친구에게 일임했다

친구의 초등학교 동창들은 서부경남 각 지역에서 흩어져 있었고

전화통화로 약속을 한 친구는 모두 넷

그 친구들이 안내한 곳

경남 사천시

사천과 삼천포는 통합을 한 도시라서 이젠 삼천포도 사천시로 부른다했다

진주에서 사천으로 가는 시간

노을이 짙다

 




 

삼천포대교의 야경

내 사진솜씨는 여기까지가 한계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은 근사한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번여행에서의 목적인 그 불쾌한 일에 앙금을 지우지 못해 밤새 맘도 속도 편치 않았다

하지만

새로 맞은 아침은 싱싱했다

낯선고장에서 밤을 보내고나면 아침 일찍 일어나 창을 열고 내다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깊게 숨을 들이쉰다

바다냄새가 좋다

 

 





작은 포구가 있는 고장이다

창고가 있고 어선을 수리하는 작은 도크가 있는 마을

붉은 지붕집 담장안에는 목련이 흐드러졌다

 

 




휴양의 섬 남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살고싶어하는 도시 남해

그 남해에서 나는 속 쓰린 아침을 맞는다

 

 




왼쪽으로는 남해와 미조항이 오른쪽으로는 사천시와 진주시로 갈 수 있단다

 

 




떠날채비를 차리고 어젯밤 숙소로 정했던 곳의 아랫쪽으로 나와 바다를 구경했다

붉은 다리가 남해대교인가?

아니 삼천포대교가 맞을 것이다

 

 




반짝이는 아침바다

저 멀리 보이는 세개의 굴뚝은 삼천포화력발전소라고 누군가 말했던 것 같다

 

 




아침바다 갈배기는 금빛을 싣고...

바다를 담는 내 사진기에 담긴 갈매기

금빛을 실은 갈매기다

 

남해에 갔는데,바다에 갔는데 싱싱한 생선회 한 접시 못 먹었다

생선회를 못 먹는 친구때문에

쩝~~

 




함양 광풍루

경남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 길가에 있다

 

남해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매화.산수유 흐드러진 하동의 쌍계사를 찾았었다

내가 찾아간 3월 21일엔 쌍계사 벚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지나쳤던 매실마을의 매화꽃은 흐드러졌는데 기실 매화꽃보다 자동차가 더 많았던것 같다

(쌍계사에 관한 것은 따로 정리했기에 여기서는 생략하려한다)

 

 




자로고 누각엔 올라가봐야 그 느낌을 제대로 알 수 있는데

이층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은 이렇게 단단히 잠겨 있었다

 

 




멀리서 이층의 현판을 당겨 찍어 보았다

 

안의 광풍루는

조선 태종 12년(1412)에 처음 짓고 선화루라 이름 지었던 것을 세종 7년(1425)에 지금의 자리에 옮겨지었고
그 후 성종 25년(1494)에 정여창이 다시 짓고 광풍루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양식을 간직하고 있는 우람한 건물이다

 

 




광풍루 옆에 있는 비석머리가 재미있는 이 비석은 그 이름이 무척 길다

상무좌우사접장하경순포선불망비(商務左右社接長河璟詢褒善不忘碑)

상무사는 광무 3년(1899) 상업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설립되어 전국 보부상단의 관리를 하였으며,
등짐장수인 부상단을 좌사로, 봇짐장수인 보상단을 우사로 그 명칭을 정했다.
접장은 좌사와 우사를 통틀어 상무사의 우두머리로,
모든 업무를 담당하고 총회를 소집하여 사회를 보는데,격년제로 뽑으며 각 지역대표 중에서 투표로 선출한다.
하경순은 시장관리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하여
상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발전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기에

1890년대 상무좌우사의 접장을 지낸 하경순(1875∼1946)의 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문화재청자료)

 




 

안의면 금천리 윤씨고가

사실 안의면 금천리 윤씨고가보다는 안의 허삼둘가옥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곳이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어째 분위기가 심상찮다

 

 




하기는 둘러쳐진 담장도 없으니 이렇게 대문을 통하지 않더라도 정면으로 접근도 가능하다

 

 

 



북쪽으로 난 대문을 들어서면 만나는 T자형의 사랑채가 있고

 

 



 

T자형의 사랑채 오른쪽으로 이어진 바깥행랑채

심상치 않았던 분위기가 이것이었다

불에 탄...

 




 

작은 화재가 아니었던가보다

 

 




이곳은 멀쩡한데

 




 

뒤쪽은 별 탈이 없어 보인다

 




 

안채가 심하게 탔다

특히 부엌쪽에

 




 

허삼둘가옥이 가장 특별한 것은 부엌이다

그런데 이 부엌이 심하게 탔다

허삼둘가옥에 답사객들의 발길이 잦은 것은

부엌을 보려함이다

여느 양반집의 구조와는 달리 유독 여자를 배려해서 지은 집이기 때문인데

 




 

이상도하지

부엌은 홀랑타버렸는데 걸어놓은 시래기는 멀쩡하다

화재가 난 후에 걸어 놓은 것인가?





 

안쪽에 있는 행랑채도 멀쩡하다

 

 




어느 못된 손이 이렇게 불을 질렀을까

 




 

씁쓸하고 안타깝고...

 

 




안의 허삼둘가옥은 1918년 윤대흥이라는 사람이 진양 갑부인 허씨 문중에 장가를 들어

부인 허삼둘과 함께 지은 집으로

가옥의 이름을 남자 주인의 이름을 따르지 않고 여자 주인인 허삼둘의 이름을 따른 것이 흥미롭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경제적 실권을 쥐고 있던 안주인의 의견이 존중되어 안채가 비중있게 지어졌다는 점 말고도

조선 후기 신분제도 철폐와 신흥부농층의 출현으로 변화된 사회상이 반영된 집으로도 의미가 있다

허삼둘가옥은 중요민속자료 제207호로 지정된 건물인데

이렇게 관리가 허술했더란 말인가

집안 곳곳에 작은 소화기들이 놓여있기는 했다

불을 지른 그 손이야 두고두고 원성을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함양군청이나 문화재청은 더 큰 원성을 들어야 마땅하다

관리 제대로 못한 함양군청은 지자체 홈페이지관리라도 제대로 해야 했다

나같이 엉성한 답사객은 이렇게 불에 탄 줄은 까맣게 몰랐고

이곳에 도착해서 많이 놀랬다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이 가옥은 2004년도에 화재를 당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함양군청 홈페이지나 문화재청은 왜 그 정보를 싣지 않았을까

한심하고 한심하다

이러니 소중한 문화재를 불태워 먹지

함양군청은 불태워먹은 문화재가 한 둘이 아니다

그 아름다운 농월정도 잘~ 태워먹지 않았는가

실수는 한번이면 족하다

함양군청 관계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업무를 보며 그 실수를 지적하는 것에 대해 어떤 말을 할지 그것이 몹시 궁금하다

 

 




주님~

주님이라도 지켜주시지 그러셨어요

네?

불을 낸  그 손도 주님의 길 잃은 어린양이라구요?

 

 



 

함양을 돌아볼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꼭 반드시 돌아봐야겠다 했던 곳

장수사터

함양사람들은 용추사라고 부른다

 

비가오려는지 날씨는 몹시도 흐려있다

흐릿한 날씨 아랑곳하지 않고 또렷이 다가오는 일주문

 



 

일주문의 포작이...포작이 보통 장엄한 것이 아니다

화려하고 장엄한 지붕의 포작을 튼튼하고 굳센 기둥이 받치고 있다

장수사터 일주문

모두 사라진 그 터에 홀로 남은 일주문

 

 




 

현대와 고전의 조화라고 할까

아니 기아와 고전의 조화가 맞다

내가 장수사터에 도착해 장수사터  일주문을 사진기에 담을 때 같이 담긴 자동차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하는 것이야 뭐라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넓은 주차장에,이렇게 텅빈 주차장에서 꼭 이곳에 주차를 해야 했을까

(장수사터를 살펴보고 있는 도중에 산행을 했던 이 자동차의 주인이 돌아왔었고

자동차는 곧 떠났다)

 

 




장수사터 일주문은

약 3m 정도의 둘레와 높이를 갖는 굵은 원기둥을 4m 정도의 간격으로 세운 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을 올렸다.
다포계 건물로서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하는 공포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것이

아마도 나라안에 이보다 더 큰 일주문을 가진 절집은 없지 싶다

 




 

덕유산장수사조계문이라 쓰인 현판

아~

함양은 지리산자락의 고장인 줄 알았는데 장수사는 덕유산자락에 있었던 절집이었구나~

 

 




장수사터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한국전쟁 때 불에 타 모두 사라져버린 장수사

 




 

돌로 만들어진 그 무엇들은 하나도 남지 않고 오히려 나무로 만든 문만 남았으니
그 역설적인 당혹스러움이 절터를 더욱 절터답게 한다.
텅 빈 공간이련만 되레 그것이 충만해 보이는 것 또한 장수사터이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용추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아니라면 그 마저도 느끼기 힘들 것이다.
간혹 덕유산 마루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점과 용추폭포의 경천동지하는 물소리가 아니라면
어찌 이 고요를 견디겠는가.
주렁주렁 무르익은 감을 달고 있는 나무가 있는 곳쯤은 금강문이나 사천왕문이 있었을 법하다.
그 나무에 기대 생각했다.
3일 동안만이라도 이곳에 머물고 싶다고 말이다.(이지누 지음 '절터,그 아름다운 만행'중에서)

 

함양

생각지도 않게 돌아보았던 함양의 몇 곳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함양은 아직도 내겐 미답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