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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보림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寶林寺鐵造毘盧舍那佛坐像).전남 장흥 본문

☆~ 풍경소리/전 남

장흥 보림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寶林寺鐵造毘盧舍那佛坐像).전남 장흥

푸른새벽* 2009. 4. 15. 12:08

 

 

 

 

 

 

 

 

 보림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寶林寺鐵造毘盧舍那佛坐像)


보림사 대적광전 안에 앉아 있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선문 종찰 보림사의 주불이다
보조선사가 주석하던 당시부터 있던 그 불상이며 높이가 2.74m나 되는데
한국전쟁 때 이전의 대적광전은 불타 없어졌으나 이 불상은 무사했다
좌대와 광배는 없어지고 불신만이 남아 있지만 신라 하대에 조성된 철조불상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히고
명문을 통해 조성년대를 확실히 알 수 있어서
9세기 이래 지방의 선종 사찰에서 조성된 비로자나불들의 계보를 확인하는 데 기준이 된다


우선 머리 부분을 살펴보면,
육계가 큼직하며 흙으로 덧붙인 나발이 몸집에 비해 커 보인다
얼굴을 조금 긴 편이고 눈썹과 콧마루의 선,가늘게 뜬 눈의 선이 모두 시원시원한 인상을 준다
원만구족한 불성의 표현하려 한 이전 시대의 불상과는 확실히 다른,
좀더 현실적인 힘이 느껴지는 얼굴이다
콧잔등은 편편하고 인중이 사다리꼴로 두드러져 있으며 두 귀는 어깨에 닿을 만큼 길다
허리가 길고 가부좌를 튼 무릎의 폭이 상당히 넓으며 얼굴과 몸에서 풍기는 표정은 건강하고 당당하다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지권인을 취했다
비로자나불의 손 모습인 지권인은 오른손을 말아 쥔 왼손 검지를 오른손 안으로 밀어 넣어
오른손 엄지와 맞댄 모양으로,모든 번뇌를 끊고 보리의 기쁨 안에 든다는 표시이며
부처와 중생이 하나이고 열반과 번뇌가 본래 같은 것이라는 가르침을 상징한다
손 부분은 체구와 달리 조그맣고 예쁘장하다
두 어깨로부터 흘러내린 법의는 명치께서 모아진 후 팔을 거쳐 무릎까지 감싸고 있다
천자락이 슬쩍 밖으로 젖혀진 어깨에서부터 굴곡을 지으며 헤쳐진 앞섶의 매무새에서
호방함이 엿보이지만 전반적인 옷주름 표현은 유려한 곡선에도 불구하고 탄력이나 긴장감없이
느슨하게 늘어져 있다
이는 9세기 후반 불상 양식의 특징이다


이 불상의 왼쪽 팔꿈치 위쪽에는 8행 60여 자에 이르는 명문이 양각되어 있다
이처럼 불신에 조성년대를 알리는 명문이 새겨진 예는 보림사 비로자나불뿐인데
그 내용을 보면 이 불상은 헌안왕 2년(858)에 무주 장사(長沙.지금의 영광)부관인 김수종이
왕에게 주창하여 왕명으로 1년 동안에 걸쳐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김수종은 나중에 경문왕 10년(870)에 서원부 소윤으로 있으면서 쌍탑을 건립하는 그 사람이다
그는 보조선사의 재가제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금 보림사 경내에 있는 보조선사 부도 비문에는 장사 부수 김언경이
헌안왕 4년(860)에 비로자나불을 주성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때문에 불상을 만든 것은 김수종인데 후임자인 김언경이 그 공을 가로챘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활동년대와 한 일의 내용으로 보아 김수종과 김언경은 같은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기존의 정설이다
불상과 비문에 적힌 조성년대가 각각 다른것은
헌안왕 2년은 철불을 부어 만들 거푸집을 만들면서 새긴 연도이고
이 거푸집을 만드는 데 1년이 걸렸으며
철불을 완성해서 봉안한 것이 헌안왕 4년이라는 것으로 설명이 된다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국보 제117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長興 寶林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


국보  제117호  
전남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 보림사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의 대적광전에 모셔진 철로 만든 불상으로, 현재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잃고 불신(佛身)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불상의 왼팔 뒷면에 신라 헌안왕 2년(858) 무주장사(지금의 광주와 장흥)의 부관이었던 김수종이 시주하여 불상을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어서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달걀형의 얼굴에는 약간 살이 올라 있다. 오똑한 콧날, 굳게 다문 입 등에서 약간의 위엄을 느낄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다소 추상화된 모습이다.


통일신라 전성기(8세기)의 불상에 비해 긴장감과 탄력성이 줄어들었고,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 앞에서 U자형으로 모아지며, 다시 두 팔에 걸쳐 무릎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옷주름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지만 탄력을 잃은 모습이다. 이런 형태의 표현은 신라 불상에서 보여주던 이상적인 조형감각이 후퇴하고 도식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9세기 후반 불상 양식의 대표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손은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이다.


이 작품은 만든 연대가 확실하여 당시 유사한 비로자나불상의 계보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신라말부터 고려초에 걸쳐 유행한 철로 만든 불상의 첫번째 예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