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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선림원터석등(禪林園址石燈).강원 양양 본문

☆~ 풍경소리/강 원

양양 선림원터석등(禪林園址石燈).강원 양양

푸른새벽* 2009. 5. 4. 18:19

 

 

 

 

 

 

 

 

 

 

 

 

 

 

 

 

 

 선림원터석등(禪林園址石燈)


선림원터 석등은
지대석 위에 하대,간석(竿石-기둥돌),사대를 모두 갖추고 화사석(火舍石-불집)을 놓은 후
그 위에다 지붕돌을 얹은 신라 시대 석등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간석에서 기존 석등과 다른 특색을 보이고 있다


지대석 위에 안상을 갖춘 팔각 하대받침을 두었으며 그 위에 하대석을 올렸다
하대석은 큼직한 귀꽃이 있는 복련과 구름무늬를 조각한 얕은 단 및 높은 괴임돌을 갖추고 있다


하대석 위에 놓인 것이 간석이다
간석 상단과 하단에는 원형으로 구름무늬를 조각했으며
위아래로부터 가늘어지기 시작하여 가운데 이르러 제일 잘룩해진 부분에 꽃무늬가 조각된 끈 모양의 띠를 둘렀고
그 때 아래위로 복련과 앙련을 장식한 마디를 두었다
마치 장구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간석 위에는 복판 앙련을 장식한 상대석을 올리고 그 위에 한 면씩 걸러가며 창을 낸 팔각의 화사석을 얹어 놓았다
각면 아랫부분에 안상이 얕게 조각되어 있는데
이 처럼 화사석에 안상까지 조각된 것은 아주 드문 예이다


지붕돌에는 하대석과 같이 귀꽃을 크고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나 이미 귀꽃 4개가 떨어져 나가고 없다
꼭대기에는 다시 8엽의 연꽃이 앙증맞게 조각돼 있다


상륜부는 대부분 없어지고 다만 복판 복련이 조각된 원형 석재가 하나 남아 있을 뿐이다


조각 연대는 선림원의 창건과 중건 시기로 추정되는 804년에서 886년 사이로 짚어본다
높이 2.92m, 보물 제 445호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양양 선림원지 석등(襄陽 禪林院址 石燈)

 

보물 제445호
강원 양양군 서면 황이리 424 
 

선림원터 안의 서쪽 언덕 위에 놓여있는 돌로 만든 등이다. 선림원은 신라의 옛 절로, 이 곳에서 출토된 신라범종을 통해, 당시 해인사를 창건했던 순응법사(順應法師)에 의해 창건되었음이 밝혀졌다. 지금은 이 터가 경작지로 변하였으나, 여러 유물들이 남아있고 각종 기와와 토기조각들이 아직까지도 발견되고 있어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석등은 불을 켜두는 곳인 화사석(火舍石)이 중심이 되어 아래에는 이를 받치기 위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이 석등은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8각형식을 따르면서도 받침돌의 구성만은 매우 독특하여 눈길을 끈다.


아래받침돌의 귀꽃조각은 앙증맞게 돌출되어 아름답고, 그 위로 가운데받침돌을 기둥처럼 세웠는데, 마치 서 있는 장고와 같은 모양이며 그 장식이 화려하다. 즉 기둥의 양끝에는 구름무늬띠를 두르고 홀쭉한 가운데에는 꽃송이를 조각한 마디를 둔 후, 이 마디 위아래로 대칭되는 연꽃조각의 띠를 둘러 모두 3개의 마디를 이루게 하였다.


화사석은 8각으로 빛이 새어나오도록 4개의 창을 뚫었고, 각 면의 아래에는 작은 공간에 무늬를 새긴 매우 드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지붕돌은 8각의 모서리선이 뚜렷하며, 추녀에는 아래받침돌에서 보았던 같은 모양의 귀꽃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경사진 면은 가파르지 않고 부드러운데, 귀꽃조각과의 어우러짐이 자연스럽다. 꼭대기에는 연꽃이 새겨진 머리장식의 작은 받침돌만 남아 있다.


지붕돌이 일부 탈락되긴 하였으나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전체적인 양식과 장식적으로 흐른 조각 등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인 개선사지석등(보물 제111호)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같은 절터내의 홍각선사탑비(보물 제446호)와 함께 신라 정강왕 원년(886)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