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경주시 남산동 1130
- # 경주시 남산동 227-3
- #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 #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
- # 금동반가사유상
- #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 # 영양군 입암면 신구리 240
- # 전북 익산시 모현동 1가
- # 중초사지 당간지주
- #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 # 칠곡 송림사전탑
- #'기축'명 범종
- #17세기 불상
- #18세기 중반 불화
- #2017 박물관전시
- #2017국립민속박물관 전시
- #2017년 민속박물관전시
- #7세기 전반 금동불
- #8세기 중엽 석조물
- #9세기 석탑양식
- #大唐平濟國碑銘
- #가을꽃
- #가을나무
- #가장 불쌍한 당간지주
- #각연사 문화재
- #각연사 보물
- #각연사 부도
- #각연사 비지정문화재
- #강릉 관음리석불대좌
- Today
- Total
바람처럼 떠나다
정읍 돌아보기. 무성리삼층석탑.석불.피향정 본문
하루에 한 곳을 느긋하게 돌아보는 답사가 아니라
먼 곳 애써 찾은 고장에서 한 곳이라도 더 돌아볼 요량으로 욕심내서 다니다보니
힘들다
좋아하는 답사도 이리 빡빡하면 멀미가 난다
정읍돌아보기에서 여러곳의 탑들을 만났다
정읍의 탑돌이 중 마지막으로 찾은 무성리
무성리삼층탑도 정읍의 착한 탑이다
이렇게 멀리서도 제 위치를 알려주니 말이다~ㅎ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무성리삼층탑은 너른 들판 작은 건물이 있는 뒤쪽에 탑의 복원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과 함께 있다
무성리삼층석탑(武城里三層石塔)
탑의 1층 몸돌이 길어서 그런가 약간 홀쭉하다는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당당한 모습이다
탑의 상륜부는 노반(露盤), 앙화(仰花), 보주(寶珠)로 장식되어 있는데
다친 곳 없이 온전한 모습이 고맙다
탑의 몸돌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으며 삼단층급받침이 있는 지붕돌의 맵시가 경쾌하다
탑의 기단 각모서리도 우주가 새겨져 있다
무성리엔 삼층탑 말고도 석불이 있다는데...
탑이 있는 옆쪽 안내판이 있다
분명 무성리석불에 관한 안내판이다
안내판은 이곳에 있는데 석불은 보이지 않으니
혹 탑 뒤쪽에 있는 작은 건물의 마당에 있는 것은 아닌지
건물의 마당으로 들어가 보았다
좁은 시멘트 마당엔 석불임직한 것은 없고 블록건물 사이 공간에 닭 몇마리가 낯선손님은 아랑곳 없이
연신 모이찾기에 바쁘다
대한불교 법상종 미륵사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출입문을 의자로 막아 놓았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외출을 하고 없다는 표시일게다
염치불구하고 의자를 치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오니 보지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살림집이다
분명 나이많은 노인네가 살고 있을 것이다
살림살이하며 꾸며놓은 모양새가 딱 그렇다
문이 열려 있는 저 안쪽 방에 석불을 모셔놓았지 싶다
정리되지 않은 방 허름하고 좁고 컴컴한 방 안에 석불을 모셔놓았다
염주를 목에 길게 드리운 석불이 마치 풍만한 중년여인이 진주목걸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자료를 들춰보지 않아도 고려시대 석불이지 싶다
고려시대 석불은 우선 그 크기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
무성리석불입상(武城里石佛立像)은
전체적으로 장대하면서도 중후한 양식으로 약간 앞으로 기울어진 1매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뒷면은 다듬지 않고 앞면만 조각한 고려시대 불상인데
이렇게 좁은 공간에 모셔져 있으니 석불의 하체를 살펴볼 수 없다는 것이 많이 아쉽다
이 석불을 삼층탑과 함께 그냥 들판에 두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을...
조심스레 석불을 살펴보고 나와 현관문을 닫고 예의 그 의자를 있던 그대로 문에 받쳐두고 나왔다
석불이 모셔진 건물을 돌아나와 탑이 있는 곳에 왔을 때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는 할매를 만났다
다짜고짜 따진다
석불을 보고 나오냐고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무조건 돈을 내 놓으란다
부처님을 뵈었으면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억지로 옷소매 잡아끌려 다시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더니
잠시 기다리라며 할매는 부엌에 딸린 방으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겠단다
시멘트에 비닐장판을 깐 바닥에 앉으라더니 방 한쪽 구석에 밀쳐놓았던 밥상을 끌어당겼다
목마르니 우선 막걸리 한 사발 마셔야 겠다며 날 더러 부처님전에 돈을 놓으란다
어쩌랴
만원짜리 지폐 한장 석불앞에 두고 나왔더니 막무가내로 막걸리를 권한다
먼 길 운전해서 가야하니 마신걸로 하겠다고 하니 아쉬운 표정 역력했다
이런식으로 이 할매는 강제공양을 받는가보다
그렇게 석불을 집안에 가둬놓고
간간이 찾는 답사객들이나 참배객들에게 어거지공양받은 것으로 생활비를 보태는 것 같았다
많이 불쾌한 것은 아니었지만 찜찜한 기분은 떨칠 수 없었다
어거지할매에게 오래오래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하고 석불이 모셔진 집에서 나와
다시 한 번더 탑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거지할매가 이 세상을 떠난다해도 그 보다 더 오랫동안 무성리탑은 이 자리를 지킬 것이다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정읍의 마지막 답사처를 찾았다
태창리에서 가장 번잡한 도로 상인들의 확성기가 요란한 곳 자동차들이 줄줄이 주차된 곳 건너편에
피향정이 있다
복잡한 네거리 찻길 건너 편 정돈된 흙담장 너머로 거대한 팔작지붕의 위용이 보인다
흙담장을 돌아가 본다
피향정 현판
누구의 글씨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피향정이란 이름은 누각의 동서 양쪽에 파 놓은 연못
상연지와 하연지에 핀 연꽃의 향기가 주위 에 가득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피향정 누마루
더운 날씨탓이 아니어도 피곤하지 않았다해도
난 언제나 이런 누마루엔 누워보고 싶다
하물며 피곤한 답사길 마지막이라 더욱 그러하다
피향정 천정과 기둥엔
이곳을 거쳐간 시인과 선비들의 시가(詩歌)를 기록한 현판이 빽빽하게 걸려 있다
건물 안쪽 천장은 지붕의 골격이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이지만
천장 일부를 가리기 위해 건물 좌우 사이를 우물천장으로 꾸며놓았는데
근래에 새로 단장을 한 것인지 단청이 선명하다
피향정 뒷편에 걸린 편액은 '호남제일정'이라 씌여 있다
피향정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고 가장 눈여겨 보았던 돌기둥
누마루는 28개의 둥근 석조기둥이 받치고 있다
기둥이 28개 인것은 우주를 28숙으로 나눴던 사상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대단한 크기의 정자를 떠 받쳐야 하는 기둥들이라 우람하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크기와 길이가 제각각인 돌기둥들이 이루어내는 조화와 역할이 대견했기 때문이다
피향정 누마루에서니 넓은 연못이 눈에 들어온다
원래는 이 피향정 앞뒤에 상연지와 하연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상연지는 메워져 길이 되고 하연지만 남아 있다
연지 가까운 곳에 있어 그런가 연립주택의 이름도 연꽃연립이다
볼품없는 사각형의 집단 거주공간일지라도 이렇게 이쁜 이름을 붙인 사람이 고맙다
피향정 누마루에서면 작은 읍내 태창리가 거의 다 보인다
이곳도 명색이 보물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지라 밤에는 불을 환히 밝히나보다
흙담장 안 모서리 네 곳에는 조명시설이 있다
피향정 안마당 한쪽에 줄줄이 늘어선 공덕비와 선정비들
피향정은
통일신라 헌안왕(857∼861) 때 최치원이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지은 시기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광해군 때 현감 이지굉이 다시 짓고 현종 때 현감 박숭고가 건물을 넓혔으며
지금 크기로는 숙종 42년(1716) 현감 유근(柳近)이 넓혀 세웠다고 한다
그 뒤에도 몇 차례 부분적으로 고쳤는데 단청은 1974년에 다시 칠한 것이라고 한다(문화재청자료)
옛 시인묵객들이 몰려와 풍월을 즐겼다는 피향정은
보물이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근래에 새로 단장하면서 그윽하고 고풍스런 맛은 사라지고 없다
문화재청자료실에서 가져온 피향정의 예전모습이다
1963년도에 보물로 지정이 되었는데 이 사진은 그 이후에 촬영한 것일게다
1974년에 단청을 새로하였다고 하나 아무래도 그 이후에 다시 한번 더 단청을 손 본 것 같았다
이 모습 그대로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보물로 지정된 것이 환영할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하긴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이 되었으니 그나마 이렇게라도 유지할 수 있었는지도 모를일이다
자동차를 세워 둔 곳으로 돌아왔다
정읍의 모든 곳을 다 돌아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작정하고 찾으려 했던 곳은 다 돌아보았다
이제 정읍의 답사를 마치려 한다
덥고 목마르고 배고프고...
이곳 태인면에서 점심식사를 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 맘 접었던 것은
맘이 급했기 때문이었다
다친 귀도 많이 아프고 전직 대통령의 장례식을 TV로라도 보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기에
서울에서의 마지막 운구행렬이나 수원 연화장의 모습이라도 집에서 TV로 봐야겠기에...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항시 서너번 쯤 휴게소에서 쉬는데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죽암휴게소에서 대충 점심을 때우고 사고나지 않을 정도로 달려 집으로 돌아왔었다
돌아온 날 밤
딸아이에게 몹시 걱정을 들었다
남복리에서 다쳤던 귀가 몹시 아파서 약을 좀 발라달라고 했더니
"세상에~ 귀 뒤가 많이 찢어 졌어요
아무리 답사가 좋기로서니 외지에서 다치면 어쩌려구
약은 발랐는데 어쩌면 병원에 가야 할 것아요
귀 뒤엔 급소가 있는데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다음날 그렇게 심각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몸살과 겹쳐 고생을 했다
그리고 귀는 일주일 간 꾸준히 약만 바르고 나았다~ㅎ
* * * *
정읍과 고창을 답사한 것은 2009년 5월 28일.29일 이틀간이었다
허접한 답사기나마 쓰려고 준비한 기간이 거의 한 달이 다되었으니...
정읍의 답사기를 끝내고 이리저리 다시 훑어보다가 나도 참 한심하단 생각을했다
정읍의 답사기를 쓰면서 어찌 그 유명한 정읍사井邑詞를 빼 먹었을꼬
가만히 생각해보니
타이밍을 놓쳤던 것이다
군데군데 정읍사를 쓰려고 했지만 맘대로 되지 않았기에
답사기 말미에 기필코 써야겠다 맘 먹었는데 그것도 놓치고 말았다.
생뚱맞지만 어쩌랴
섭섭하니 지금이라도~
달하 노피곰 도뎌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젼 드를 드듸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졈그를 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답사.여행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원 안심사 돌아보기. 충북 청원 (0) | 2009.09.21 |
---|---|
서울 춘천고속도로를 달려보다 (0) | 2009.07.25 |
정읍 돌아보기. 천곡사지칠층석탑.정혜사석조보살입상 (0) | 2009.06.28 |
정읍 돌아보기. 장문리오층석탑.은선리삼층석탑 (0) | 2009.06.27 |
정읍 돌아보기. 용흥리석불.해정사지석탑 (0) | 2009.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