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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청궁(乾淸宮).경복궁 본문

☆~ 바람소리/궁궐(宮闕)

건청궁(乾淸宮).경복궁

푸른새벽* 2010. 1. 20. 12:02

 

 

 

 

 

 

 

 

 

 

 

 

 

 

 

 

 

 

 

 

 

 

 

 

 

 

 

 

 

 

 

건청궁(乾淸宮)


1873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경복궁(景福宮) 중건을 마무리하면서 고종은 국가 재정이 아닌 내탕금(內帑金)을 들여 궁궐 안의 북편에 건청궁(乾淸宮)을 짓기 시작했다.
 

이 해에 고종은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섭정을 종식하고 친정(親政)을 선언하였는데, 이 건청궁 건립은 고종이 대원군의 섭정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독립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고종은 1884년부터 건청궁(乾淸宮)에서 임어하면서 정무를 처리했다.

 
신문물을 수용하여 근대화를 도모한 산실인 건청궁(乾淸宮)의 건물 배치는 크게 장안당(長安堂)·곤녕합(坤寧閤)·복수당(福綏堂)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장안당 서쪽에는 각감청(閣監廳)이 있고, 남쪽에는 연못과 그 안에 만들어진 섬과 향원정(香遠亭) 등이 있다.고종의 서재로 쓰인 집옥재(集玉齎)는 전통 한옥이 아닌 중국식 벽돌로 지어졌으며, 장안당 뒤쪽의 양관(洋館) 관문각(觀文閣)은 외국 외교관들을 접대하는 장소로 활용했다.

 
1887년에는 건청궁(乾淸宮)에 조선 최초로 전등이 설치되었는데, 이는 중국이나 일본의 궁정 설비보다 2년이나 앞선 것이었다.1895년 일제는 건청궁(乾淸宮) 안의 곤녕합(坤寧閤)에서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하였다.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시신은 옥호루(玉壺樓)에 잠시 안치되었다가 건청궁의 뒷산인 녹산(鹿山)에서 불태워졌다. 고종(高宗)은 1896년 아관파천 후 건청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경운궁(慶運宮)으로 이어(移御)했다.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