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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동화사(八公山 桐華寺).대구광역시 동구 본문

☆~ 절집.절터/대구광역시

팔공산 동화사(八公山 桐華寺).대구광역시 동구

푸른새벽* 2010. 3. 6. 00:44

 





 





 

 









 





 

 









 





 

 





 





 





 









 





 

 





 









 

 





 





 





 









 

 





 









 





 





 





 





 

 





 





 

팔공산 동화사(八公山 桐華寺)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산 124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팔공산(八公山)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동화사(桐華寺)는 팔공산의 가장 대표적 사찰로 이름나 있는 곳이다. 팔공산의 수려한 산세를 배경으로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면서,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불교문화의 대표적 유산들이 즐비하다. 일제강점기에 31본산의 하나였던 이곳은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로서 상당 수의 말사와 부속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동화사가 자리한 팔공산은 한국의 대표적 명산(名山) 가운데 하나이다. 대구광역시의 북쪽에 병풍처럼 둘러있는 산악으로, 대구․군위․영천․칠곡․경산의 경계에 위치하며 높이가 1,193m에 달한다. 최고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하여 동봉과 서봉이 양 날개를 펴고 있는 듯한 모습이며, 산 자체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일찍부터 영남 지방의 최고 영산(靈山)으로 일컬어져 왔다. 본래 이 산은 공산(公山)․부악(父岳)․중악(中岳) 등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중악’이라는 이름은 신라 왕실이 이곳에서 정기적인 제사를 지내면서 붙여진 이름이며, 조선시대까지는 대체로 ‘공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지금의 팔공산(八公山)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고려 태조 왕건과 연계된 내용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후삼국 전쟁이 한창이던 때, 견훤의 군대와 왕건의 군대가 이곳에서 큰 전투를 벌이게 되었는데 왕건이 동화사 인근에서 있었던 전투에서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자 신숭겸(申崇謙)이 왕건을 가장하여 맞서 싸웠으며, 결국 신숭겸과 김락(金樂) 등 8명의 장수가 이 전투에서 죽고 말았다. 훗날 왕건은 이들 여덟 명의 장수를 크게 선양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산의 이름도 팔공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내용이다. 동화사 인근의 전투는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지만, 과연 이 때문에 산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공산’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음을 볼 때, 팔공산으로 변화된 시기와 그 유래 등에 대해서는 보다 다양한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


여하튼 팔공산은 신라 때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왕실로부터 크게 중시되던 산악이었다. 그 결과 팔공산의 골짜기마다 많은 사탑(寺塔)이 들어서게 되었는데, 이곳 동화사를 비롯하여 동쪽에는 은해사(銀海寺), 서쪽에는 파계사(把溪寺)가 있으며 군위에는 극락정토를 기리기 위하여 아미타불을 모신 제2석굴암이 있다. 또한 유명한 갓바위부처님을 비롯하여 송림사․부인사 등 그야말로 이곳 팔공산은 불국토와 같은 형상으로 가꾸어져 왔다. 동화사는 이러한 팔공산의 여러 사암(寺庵)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사찰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동화사는 그 역사적 중요성으로 인해 비교적 많은 관련 자료를 남기고 있다. [삼국유사]와 [고려사] 등의 일반 역사서 뿐만 아니라, 사중에서 전해 내려오는 자료의 수도 풍부한 편이다. 특히 금당암 동․서 삼층석탑과 비로암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은 9세기 무렵 동화사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제 이들 자료를 중심으로 동화사의 창건과 관계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동화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알려져 있다. 우선 493년(신라 소지왕 15) 창건설을 들 수 있는데, 극달화상(極達和尙)이 이 해에 창건하고 사찰명을 유가사(瑜伽寺)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현재 동화사에는 극달 화상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 진영에는 ‘공산개조극달화상지진영(公山開祖極達和尙之眞影)’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기도 하다. 현재로써는 언제부터 이 설이 전해져 내려왔는지 확인할 수 없으며, 1931년 김정래(金鼎來)가 지은 「조선불교선교양종제일수사찰대본산경북달성군공산면동화사적비(朝鮮佛敎禪敎兩宗第一首寺刹大本山慶北達城郡公山面桐華寺蹟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동화사는) 생각건대 극달존숙(極達尊宿)께서 부악(父岳)의 남쪽 기슭에 창건하고 유가(瑜伽)라고 이름을 붙였으니, 때는 신라 소지왕 15년인 계유년(癸酉年)이었다.'

*대한불교진흥원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