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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적상산 안국사(赤裳山 安國寺).전북 무주 본문

☆~ 절집.절터/전 북

무주 적상산 안국사(赤裳山 安國寺).전북 무주

푸른새벽* 2010. 11. 5. 09:29

 






 

 






 






 






 






 






 






 






 






 






 






 











 

 






 






 











 






 






 

 

적상산 안국사(赤裳山 安國寺)


전북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산184-1


옛날 적상산성에는 여러 절이 있었다.산성 안에 산성사(山城寺).보경사(寶鏡寺).상원사(上元寺).중원사(中元寺).호국사.안국사 등이
산성 밖에 고경사(高鏡寺).삼일암(三日庵) 따위의 절이 있었다고 옛 기록은 전한다.그러나 지금은 이들이 모두 흔적조차 찾기 어렵고 오로지 안국사 하나만이 명맥을 잇고 있다.


무주읍지인 『적성지(赤城誌)』에 실린 「적상산안국사기(赤裳山安國寺記)」에 의하면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 월인(月印)스님이 창건했으며 조선 초기 태조 이성계의 명을 맏은 무학대사가 고쳐 지은 적이 있다고 한다.임진왜란이 끝나고 적상산에 사고가 들어선 다음부터 안국사는 호국사와 더불어 사고를 지키는 수호사찰이 되어 조선왕조가 끝나는 날까지 그 임무를 감당했다. 1910년 사고에 보존되었된 서적들이 모두 서울로 옮겨진 뒤로는 사고와 더불어 절도 차츰 퇴락의 길을 걸었다.낡은 대로 다소곳한 모습으로 숨어 있던 안국사가 커다란 변화를 겪은 건 불과 10여 년 전이다.1989년 적상산에 양수발전소 건설이 시작되면서 수몰지구 안에 들게 된 안국사는 어쩔 수 없이 이전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그래서 옮겨 온 곳이 본래의 절터에서 남쪽으로 1Km 떨어진 지금 절이 들어선 자리이다.원래 이자리는 호국사의 옛 터이다.수호사찰로서의 임무를 끝내고 힘들게 목숨을 이어오던 호국사는 1949년 추석날 일어난 화재로 말미암아 터만 남긴 채 지상에서 사라져버렸다.바로 그 터에 오늘날의 안국사가 옮겨온 것이다


긴 계단을 올라 청하루(淸霞樓)를 지나면 예닐곱 채의 골기와집이 듬성듬성 자리잡고 있다.일별하면 어쩐지 몸에 맞지 않는 새옷처럼 건물들이 터와 어울려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모두 새로 짓거나 옮겨오면서 옛맛을 잃어버린 탓이리라.하지만 건물,천불전만은 눈여겨 볼 만하다.사고의 선원각을 옮겨온 것이 바로 이 집인데 옆면과 뒷면에 두른 널벽,앞뒤로 붙인 여러 개의 교창,마루로 위층과 아래층이 분리된 중층구조 등에서 사고 건물의 잔영을 살필 수 있다.한 가지 더 보탠다면 절 뒤편 언덕쯤에서 바로보는 조망 또한 나무랄 데 없다.그밖에 절로 오르는 비탈이 시작되는 곳에 늘어선 4기의 석종형 부도 인조 23년(1645)에 세운 호국사비,1788년 주조된 동종 따위에 잠시 눈길을 주어도 좋으리라.


정작 안국사의 보배는 우리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극락전에 보관되어 있는 안국사 괘불(掛佛)이 그것으로 특별한 행사 때에나 밖에 걸리니 평소에는 좀체 보기 어렵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