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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실상사(智異山 實相寺).전북 남원 본문

☆~ 절집.절터/전 북

지리산 실상사(智異山 實相寺).전북 남원

푸른새벽* 2007. 6. 6. 00:39




 




 

 

 







 




 

 




 







 




 




 

 







 




 

 




 







 




 




 




 




 

 







 




 

 







 




 




 

 

지리산 실상사(智異山 實相寺)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20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실상사(實相寺)는 유구한 역사와 함께 상당수의 성보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명찰(名刹)이다.

 

평지가람 형태를 띠고 있는 실상사는 그 범위가 매우 방대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본래 사역보다 상당히 축소되어 있는 상태이다.
일제강점기에는 해인사 말사로 속해 있었으나,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실상사는 유형의 문화유산도 상당수 간직하고 있는 곳이지만, 오히려 한국불교사 전체에서 차지하고 있는 무형의 비중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곳이다. 한국불교의 주요 사상인 선(禪)의 역사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선사상은 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으로 대표되는 여러 산문이 개창되면서 본격적인 개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곳 실상사는 구산선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형성된 실상산파(實相山派)의 근본 도량인 것이다.


사실 구산선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선법을 전래한 곳은 가지산문(迦智山門)이다. 이 산문의 개창자인 도의(道義) 스님은 821년에 귀국하여 선법(禪法)을 유포시키므로써 시기상 가장 앞선 인물로 평가되는 것이다. 하지만 도의 스님의 선법 유포는 당시 불교계와 사회에서 크게 환영받지 못했고, 이에 실망한 스님은 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들어가 40여 년간 수행에만 몰두하였다.


도의 스님보다 5년 늦게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인물이 바로 실상산문을 개창한 홍척국사(洪陟國師)이다. 스님은 중국의 고승 서당 지장(西堂智藏)의 문하에서 선법을 이어받은 후 826년에 귀국하였으며, 이후 858년에 이곳 실상사를 창건하고 선 수행의 도량으로 정착시켜 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최치원(崔致遠)은 <지증대사적조탑비(智證大師寂照塔碑)>를 지으면서, “선사가 당에 가서 법을 구해 온 것은 원적 도의(元寂道義)보다 뒤지지만, 절을 짓고 문파를 이룬 것은 구산선문 가운데 가장 먼저이다.” 라는 글귀를 남기기도 하였다.
결국 실상사는 신라 말의 여러 산문 가운데 가장 먼저 도량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불교진흥원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