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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지장사(地藏寺).경북 의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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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지장사(地藏寺).경북 의성

푸른새벽* 2011. 9. 13. 15:49

 

 





 





 





 





 





 





 





 





 





 









 

 





 





 





 





 









 

 





 





 





 





 





 

의성 지장사(地藏寺)


경북 의성군 안사면 월소리 750


신라시대에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지만 그밖의 연혁은 사적이 알려지지 않아 알 수 없다. 그 동안 구전되기로는 현재 지장사 요사에 걸려 있는 「지장사(地藏寺)」 편액이 숙종(肅宗, 재위 1675~1719)의 친필로 어느 때인가 이곳에 들른 뒤 쓴 것이며, 그 뒤로 지장사에 하마비(下馬碑)와 어각(御閣)이 지어졌다고 한다. 어각은 지금 남아 있지 않지만 하마비는 아직 있다. 그리고 1882년(고종 19)에 명성황후가 임오군란을 피하여 이곳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고 하며, 그때 축원문을 남겨 1970년대까지 절에 보관되었으나 지금은 없다고 한다.


이렇듯 절의 비중과 오랜 역사에 비해 구전만 있을 뿐, 관계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지장사의 연혁에 대하여 더 자세히 알 수 없는 것은 무척 아쉬운 노릇이다. 다만 근래 몇 종류의 상량문·복장문이 발견되면서 지장사 연혁의 일단을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우선 1722년(경종 2)에 적은 「복장문(腹藏文)」을 통해 이 해에 법선(法禪)·광식(廣湜) 스님 등이 모연하여 불화를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법선 스님은 혹시 1684년(숙종 10) 영주 부석사 괘불을 조상할 때 참여했던 법선 스님과 동일인물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런데 이 복장문에는 이 불사를 위해 당시 의성읍의 태수가 여러 관원들과 함께 시주자로 참여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지장사의 사격(寺格)이 높았음과 아울러 일반인뿐만 아니라 유학자 또는 관리들도 불사에 적극적이었음이 기록된 매우 흥미로운 자료인 듯하다. 이 복장문은 당대의 이름 높은 화사(畵師)였던 용안 성징(龍眼性澄) 스님이 작성한 것이다.


또한 불화 조성 후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파탱시주질(婆幀施主秩)」이 있는데, 여기에 증명 대덕으로 자심(自心) 스님과 화원(畵員)으로 참여한 성징·육청(六淸)·인행(印行)·도관(道冠)·세관(世冠)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 시주질 자체는 정확히 언제 작성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화원 등의 이름으로 볼 때 대체로 18세기 초반에 불화를 봉안하면서 쓴 것으로 보인다.


1803년(순조 3)에 기록한 「용궁지장사성적암개금발원문(龍宮地藏寺性寂庵改金發願文)」에는 지금은 없어진 지장사의 산내암자로 보이는 성적암에서 불상을 개금하고 후불탱·중단탱(中壇幀)·신중탱 등을 조성하였음이 기록되어 있다. 이 불사에는 지장사의 초행(草行)·긍천(亘天), 성적암의 취봉 도윤(翠峰道允) 스님 등의 이름이 보인다.


그리고 1838년(헌종 4)에 기록한 「누상량문(樓上樑文)」을 보면 이 해에 누각을 지었는데, 역시 성적암 등에서도 함께 참여하였다. 이 불사는 지장사에서 금파 성징(金波性澄)과 영일(永一)·원응(圓應) 스님 등이 주도하였고, 성적암에서는 율암(栗巖) 스님 등이 참여하였다.


최근에는 1996년 명부전을 새로 지으며 오늘에 이른다.
*전통사찰총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