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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숙수사지(榮州 宿水寺址).경북 영주 본문

☆~ 절집.절터/경 북

영주 숙수사지(榮州 宿水寺址).경북 영주

푸른새벽* 2017. 4. 25. 09:33

























































































영주 숙수사지(榮州 宿水寺址)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8


영주 소수서원 입구의 소나무숲에 위치한다.사찰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東文選』에 수록된 魯璵의 7언 율시에 숙수사의 명칭이 언급되어 있으며,『新增東國輿地勝覽』 卷 25 豊基郡 古蹟 條에는 '小白山에 있다'고 전하면서 魯璵의 시를 함께 수록하고 있다.한편 『海東雜錄』에는 숙수사의 옛 터에 서원이 건립되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숙수사는 조선 중종 37년(1542)에 훼철되고 그 자리에 소수서원이 건립되었다고 한다.


사지에는 당간지주 한 쌍이 남아 있고,광복 후 일부 발굴되어 50여 점에 달하는 삼국시대의 금동불이 출토되었다.
*한국사지총람자료*



영주 숙수사지(榮州 宿水寺址)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


현재는 조선시대의 사설교육기관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사적 제55호(지정면적 7,504㎡)로 지정되어 있으며, 사찰경내에 있었던 숙수사의 당간지주(幢竿支柱)가 보물 제5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이 숙수사가 언제 법통이 끊어졌는지 알길은 없으나 고려 후기의 학자인 안향(安珦)이 숙수사에서 수학하여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그의 아들과 손자까지 이 숙수사에서 수학했다고 한다.


더구나 안향이 원나라로부터 주자학을 도입하여 이것이 조선 건국의 정신적인 이념이 되었으므로, 중종 때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이 1543년(중종 38) 안향의 고향이며, 또 안향이 공부했던 숙수사의 옛터에 사우(祠宇)와 강당을 세우고 유생(儒生)들을 공부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 되었다. 이로 보아 숙수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건립되어 고려시대까지 존속되어오다 조선시대의 어느 시기에 법통이 끊기고 터만 남아오다 1543년에 이 절터에 서원을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1953년 현재의 소수서원 후편으로 소수중학교 운동장을 마련하다 청동불상 25구가 출토되었는데, 이 불상들은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으로 밝혀졌다. 또 서원경내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각종 석조물이 남아 있어 사찰의 규모와 존폐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