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산청 사월리 석조여래좌상(山淸 沙月里 石造如來坐像).경남 진주 본문

☆~ 풍경소리/경 남

산청 사월리 석조여래좌상(山淸 沙月里 石造如來坐像).경남 진주

푸른새벽* 2018. 2. 13. 21:20


































































































산청 사월리 석조여래좌상(山淸 沙月里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371호   
경남 진주시 망경남동 산3 금선암


남강을 사이에 두고 진주성과 마주 보는 망진산(望晋山)에 자리잡은 금선암의 제일 높은 건물 안에 모셔져 있다.금선암은 대웅전과 약사전 그리고 종각과 요사채 등이 들어서 있는 조그만 암자이다.본래 단성 석조여래좌상은 산청군 단성면 사원리 절터에 있었는데 1957년 현위치로 옮겨왔다.


불상은 공배와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으나 광배 윗부분이 심하게 파손되었고,얼굴도 부분적 손실이 심해 근래에 시멘트로 보수를 했다.


팔각 연꽃대좌 위에 얹힌 상대석에는 큰 연화문이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는데 손상이 심하다.중대석에는 모서리마다 우주가 표현되었고,면 마다 한쪽 무릎은 세우고 한쪽 무릎은 꿇은 보살상,두 손을 가슴에 모아 합장한 상,지물을 든 신장상 등이 부드럽고 세련되게 조각되어 있으나 많은 부분이 손상되었다.하대석에는 연화문 8엽이 새겨져 있다.


불상은 나발에 육계가 표현되어 있고,두 눈썹 사이에 백호가 크게 표현돼 있으며,코와 인중이 매우 길다.어깨에 닿을 정도로 귀가 늘어져 있고,목이 매우 짧다.항마촉지인에 약합을 든 모습으로 미루어 약사여래가 아닌가 추정되고 있으며,박력 있는 신라 하대 불상의 예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으나 당당한 어깨와 가슴이 허리께에서 급격히 가늘어졌다든가,지나치게 벌어진 무릎 등은 어색하다.우견편단한 옷주름은 계단식으로 평범하게 처리되었고 하반신 쪽으로 내려와서는 겨우 발목에만 표시되었다.


광배는 가장자리가 떨어져 나갔지만 두광과 신광을 두 줄기의 도드라진 선으로 나눈 것이 분명하고 두광과 신광 밖 가장자리에 공양상과 구름무늬를 조각하였으며,두광 안에는 연화문을 소박하게 새겼다.불상의 전체 높이가 1.33m이며,보물 제371호로 지정돼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산청 사월리 석조여래좌상(山淸 沙月里 石造如來坐像)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원리의 절터에 묻혀 있던 것을 1957년에 경남 진주의 금선암(金仙庵)으로 옮긴 것이다. 불상을 안치한 대좌와 불상 뒤의 광배(光背)를 모두 갖추고 있으나 무릎 부분을 비롯하여 많은 부분이 깨진 상태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머리에 비해서 얼굴이 지나치게 길다. 어깨는 넓고 당당하나 허리를 너무 잘록하게 표현하여 어색한 느낌이 드는데, 이러 불상의 모습은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특징이기도 하다. 현재 무릎 부분이 깨졌기 때문인지 비례가 잘 맞지는 않지만 넓은 어깨, 당당한 가슴 등에서 박력있는 형태를 보여준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고 있는데 옷주름에는 형식화가 심하다.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배꼽 부근에 놓인 왼손에는 약그릇이 들려 있다. 따라서 이 불상은 약사여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바깥 부분이 거의 깨진 광배에는 연꽃무늬, 구름무늬, 공양 올리는 모습 등이 새겨져 있다. 8각의 대좌에는 보살상과 신장상, 큼직한 연꽃무늬 등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 역시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적 특징이라 하겠다. 아무튼 이 불상은 박력있는 통일신라 후기 불상의 귀중한 예로서 높이 평가된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