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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聞慶 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경북 문경 본문

☆~ 풍경소리/경 북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聞慶 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경북 문경

푸른새벽* 2018. 4. 16. 22:42








































































































문경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聞慶 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의 그 옆에 있는 비석은 지증대사의 행적을 적은 적조탑비이다.그 새져진 글은 신라 하대의 명문장가 고운 최치원이 지은 유명한 '사산비명(四山碑銘)'의 하나이다.사산비 가운데 가장 늦은 893년 무렵에 글을 지었고 글씨는 분황사의 노승 혜강이 썼는데 비가 세워진 것은 924년의 일이다.지증대사의 행적을 알려줌은 물론,신라 선종사에도 중요한 자료로 여겨지는 비이다.높이 273cm의 비신은 깨어진 흔적이 있지만 글자는 알아볼 수 있으며,고개를 꼿꼿하게 쳐든 당당한 거북받침과 이무기가 꿈틀대는 비머리를 다 잘 갖추고 있다.지증대사적조탑비는 보물 제138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문경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聞慶 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


보물 제138호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485 봉암사 


봉암사를 창건한 지증대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비로, 최치원의 4산비(四山碑) 중 하나이다.


지증대사(824∼882)는 17세에 부석사에서 승려가 되었고,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파를 창시하였다. 헌강왕 8년(882)에 입적하자, 왕은 ‘지증’이란 시호를 내리고, 탑이름은 ‘적조’라 하였다.


거북모양의 비받침은 머리는 용의 형상이고 몸은 거북 모양이며, 등 위에는 비를 끼워두는 비좌(碑座)를 갖추고 있다. 비몸 위로 올려진 머릿돌에는 연꽃무늬와 함께 서로 다투듯 얽혀 있는 8마리 용이 장식되어 생동감이 느껴진다.


비문에는 지증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자 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데, 통일신라 후기의 문장가인 최치원이 글을 짓고, 당대의 명필인 승려 혜강이 글씨를 썼다. 글씨는 왕희지체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꾸밈이 없고 우아하다.


이 비는 통일신라 경애왕 원년(924)에 세웠으며, 조각과 비문의 글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