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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聞慶 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경북 문경 본문

☆~ 풍경소리/경 북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聞慶 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경북 문경

푸른새벽* 2018. 4. 15. 21:23













































































































































































문경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聞慶 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


봉암사 대웅보전에서 서북쪽 뒤에 자리잡은 전각 안에는 봉암사의 창건주인 지증대사(智證大師,824~883)의 부도와 부도비가 있다.


지증대사는,비문에 따르면 "키가 8자 남짓했고 얼굴이 1자쯤이었으며 말소리가 웅장하고 맑았으니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한다.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9세에 출가하여 부석사에 입신하였다.열일곱에 계를 받고 수행하던 중 꿈속에서 보현보살을 친견하기도 했다.경주의 세속화되어가는 불교를 멀리했던 듯,경문왕의 부름에도 나아가지 않고 수행에 힘쓰다가 879년 이곳에 봉암사를 창건하였다.창건 3년 뒤인 882년 12월(음력)에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고 전한다.


지증대사 부도인 적조탑(寂照塔)은 지증대사가 입적한 바로 뒤인 883년에 세운 것으로 연대도 분명하고 부도의 주인공도 확실하면서 규모가 크고 조각이 유려하며 아름답다.지대석 위에 자리잡은 8각 하대석에는 면마다 사자를 새겼는데,조각이 두툼하고 자세도 모두 달라서 마치 사자가 꿈틀거리는 듯하다.중대석 괴임에는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을 새겼으니 이곳에서부터 천상의 모습을 보여준다.얼굴은 사람이고 몸은 새형상인 가릉빈가가 나는 위로 중대석에는 사리가,합장하고 무릎을 꿇은 공양상,주악상 등이 새겨져 있다.피어나는 연꽃 모양인 8각 상대석 위로 난간석을 두르고 몸돌을 얹었다.몸돌에는 앞뒷면 문에 자물쇠를 채운 모양을 새기고 그 좌우에 사천왕을 새겨 사리를 지킨다는 상징을 나타냈으며 남은 양쪽 두면에는 보살상을 모셨다.지붕돌은 전체 비례에 견주어 다소 넓어서 무거워 보인다.상륜부에 노반.복발.보주까지 남아 있어 비교적 원형 그대로 간직된 모습이다.보물 제137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문경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聞慶 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


보물 제137호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485 봉암사 


지증대사의 사리를 모신 부도로 봉암사 대웅전 왼쪽에 서 있다. 지증대사(824∼882)는 이 절을 창건한 승려로, 17세에 승려가 되어 헌강왕 7년(881)에 왕사로 임명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봉암사로 돌아와 이듬해인 882년에 입적하였다. 왕은 ‘지증’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 이름을‘적조’라 하도록 하였다.


이 부도는 사리를 넣어두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하여 아래에는 이를 받쳐주는 기단부(基壇部)를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얹었다.


기단은 2단으로 이루어졌으며 평면 모양은 8각이다. 밑 단에는 각 면마다 사자를 도드라지게 조각하였으며, 윗단을 괴는 테두리 부분을 구름무늬로 가득 채워 두툼하게 하였다. 윗단은 각 모서리 마다 구름이 새겨진 기둥조각을 세우고, 사이 사이에 가릉빈가를 새겨 넣었는데 그 모습이 우아하다. 가릉빈가는 불교에서의 상상의 새로, 상반신은 사람 모습이며, 하반신은 새의 모습이다. 가운데받침돌의 각 면에는 여러 형태의 조각을 새겨 넣었는데, 더욱 정교하고 치밀하다. 윗받침돌은 윗면에 탑신을 괴기 위한 굄대를 두었으며, 모서리마다 작고 둥근 기둥 조각을 세워 입체감 있는 난간을 표현하였다.


탑신은 8각의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두었고, 앞뒤 2면에는 자물쇠와 문고리가 달린 문짝 모양을 조각하였다. 그 양 옆으로는 불교의 법을 지키는 사천왕(四天王)을, 나머지 두 면에는 보살의 모습을 돋을새김 하였다.


지붕돌 역시 8각이며, 아래에는 서까래가 두 겹으로 표현되어 겹처마집을 보고 있는 듯하다. 처마는 살짝 들려 있으며, 낙수면의 각 모서리선은 굵직하고 끝에 꽃장식이 알맞게 돌출되어 있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연꽃받침 위로 머리장식이 차례로 얹혀 있다. 지붕돌의 일부분이 부서져 있으나 각 부분의 꾸밈이 아름답고 정교하며, 품격이 느껴진다.


이 부도는 전체적인 비례가 잘 어우러져 있으며, 지붕돌이 조금 넓어 보이기는 하지만 안정감이 있다. 부도 옆에는 탑비가 나란히 서 있어서 지증 대사의 생애와 행적을 알 수 있으며, 비문의 기록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헌강왕 9년(883)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