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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운악산 봉선사(南陽州 雲岳山奉先寺).경기 남양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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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운악산 봉선사(南陽州 雲岳山奉先寺).경기 남양주

푸른새벽* 2019. 6. 10. 09:47







































남양주 운악산 봉선사(南陽州 雲岳山奉先寺)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이다. 969년(광종 20)에 법인국사(法印國師)탄문(坦文)이 창건하여 운악사(雲岳寺)라고 하였다. 그 뒤 조선 세종 때에 이전의 7종을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통합할 때 이 절을 혁파하였다가, 1469년(예종 1)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尹氏)가 세조를 추모하여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89칸의 규모로 중창한 뒤 봉선사(奉先寺)라고 하였다.


당시 봉선사의 현판은 예종이 직접 썼다고 하며, 현재 보물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는 봉선사대종을 같은 해에 주조하였다고 한다. 1550년(명종 5)에 이 절은 선교양종 중 교종의 수사찰(首寺刹)로 지정되어 전국의 승려 및 신도에 대한 교학진흥의 중추적 기관이 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으며, 이듬해인 1593년에 주지 낭혜(朗慧)가 중창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으로 다시 소실된 것을 1637년에 주지 계민(戒敏)이 중창하였으며, 1749년(영조 25)에는 재점(再霑)이 중수하였다.


1790년(정조 14)에는 나라에서 전국사찰을 관할하기 위한 5규정소(五糾正所)를 설치할 때 이 절은 함경도 일원의 사찰을 관장하였다. 1848년(헌종 14)에는 화주 성암(誠庵)과 월성(月城)이 중수하였고, 1902년에 도성 안의 원흥사(元興寺)를 수사찰인 대법산(大法山)으로 삼았을 때 이 절은 16개의 중법산(中法山) 가운데 하나로 지정되어 경기도의 전 사찰을 관장하였다. 1911년에 사찰령이 반포되었을 때는 31본산의 하나가 되었고, 교종대본산으로 지정되어 교학진흥의 주역을 담당하였다.


또 1926년에는 주지 월초(月初)가 대웅전과 요사채를 중수하고 삼성각(三聖閣)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1951년 3월 6일에 법당 등 14동 150칸의 건물이 완전히 소실되었다. 그 뒤 1959년에 화엄(華嚴)이 범종각을 세운 데 이어 1961년부터 1963년까지운경(雲鏡)과 능허(凌虛)가 운하당(雲霞堂)을 세웠고, 1970년에는 주지 운허(耘虛)가 큰법당을 중건하고 1977년에는 월운(月雲)이 영각(靈閣)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큰법당·삼성각·개건당(開建堂)·방적당(放跡堂)·운하당·범종각·청풍루(淸風樓)·요사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큰법당은 대웅전과 같은 법당으로서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한글현판을 단 것이다. 법당 사방 벽에는 한글 『법화경』과 한문 『법화경』을 동판에 새겨놓아 이채롭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397호로 지정된 남양주 봉선사 동종을 비롯하여 1903년에 그린 칠성탱화, 사찰 입구의 보운당부도(報雲堂浮屠) 등이 있다.


그리고 큰법당 앞에는 1975년에 운허가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사리 1과를 봉안한 5층탑이 있으며, 1981년에는 운허의 부도탑을 세웠다. 이 밖에도 사찰 안에는 ‘춘원 이광수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절 옆에 있는 광릉은 사적 제197호이며, 천연기념물 제197호인 크낙새가 주변 숲에 서식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



남양주 운악산 봉선사(南陽州 雲岳山奉先寺)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운악산에 자리한 봉선사는 고려시대 창건이후 조선시대 초에 이르기까지 절의 역사를 전하는 자료가 없어 어떤 종파에 속하고, 어떤 사상적 특성을 지녔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1469년(예종 1) 세조의 妃인 정희왕후의 발원으로 크게 중창되면서부터이다. 이때에는 1424년(세종 6) 7개의 종파를 禪敎兩宗으로 조직한 이후 禪宗判事가 머무르는 사찰로서, 또한 세조의 陵寢寺刹로 지정되어 願刹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1551년(명종 6)에 敎宗의 首寺刹로 지정되어 교종의 僧科考試를 치르고, 승려들이 모여 교학을 익히는 도량으로 변모를 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 인하여 오늘날 봉선사는 한국불교에 있어 교종의 大本山으로서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1790년(정조 14) 정조에 의해 용주사가 창건되면서 불교가 부흥되기도 했는데, 이 때 봉선사는 전국 5糾正所의 하나로 지정되어 함경도 일원의 사찰을 관리하였다.


1902년에는 元興寺가 전국 사찰의 총본산이 되면서 봉선사는 전국 16개 수사찰 가운데 하나가 되어 경기도내의 본산이 되었다. 1911년에는 일제의 사찰령 시행으로 전국사찰이 31본산 체제로 나눌 때 敎宗本山으로 지정되어 경기도내 23개 사찰을 관장하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1968년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가 된 이후 17개 지역 72개 사찰을 관장하며 경기 북부 지역의 불교진흥에 힘쓰고 있다.
*한국전통사찰정보자료*


(봉선사는 딱히 찾아 볼 문화재가 범종뿐이라 봉선사 경내의 사진촬영은 하지 못하였다.

단체답사는 여럿이 함께 하기에 장점이 많지만 일정표 빡빡하여 시간에 쫒기다보니 봉선사에선 범종 사진 뿐이다.

하여 2010년 4월에 찾았던 봉선사 사진을 아래에 게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