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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계산리오층석탑(淸州山里五層石塔).충북 청주 본문

☆~ 풍경소리/충 북

청주 계산리오층석탑(淸州山里五層石塔).충북 청주

푸른새벽* 2024. 1. 6. 17:47

 

 

 

 

 

 

 

 

 

 

 

 

 

 

 

 

 

 

 

 

 

 

 

 

 

 

 

 

 

 

 

 

 

 

 

 

 

 

 

 

 

 

 

 

 

 

 

 

 

 

 

 

 

 

 

 

 

 

 

 

 

 

 

 

 

 

 

 

 

 


청주계산리오층석탑(淸州山里五層石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계산리 산 46-3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에 있는 고려시대 일반형 석조 불탑. 석탑. 보물.

높이 5.9m. 석탑은 ‘말미장터’라고 불리는 마을의 남쪽에 있는 언덕의 밭에 있는데, 상태로 보아 현재의 위치가 원래의 자리로 추정된다. 상륜부(相輪部)는 남아 있지 않고, 받침돌의 덮개돌 일부와 2층 지붕돌의 일부가 약간 파손되었을 뿐 각 부분이 대체로 완전한 상태이다.

단면이 네모난 석탑은 단층 받침돌 위에 5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일반적인 석탑으로, 모래가 많이 섞인 화강암으로 조성되었다. 받침돌의 아랫부분은 10여 장의 길고 큰 돌을 놓아 바닥을 마련하고, 그 위에 높직한 7장의 굄돌을 올린 모습이다. 옆면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고, 윗면에는 둥글고 높직한 굄과 함께 약간 낮은 각진 굄이 있다. 받침돌의 면석은 4장의 널돌로 조립하였는데, 각 면을 서로 엇갈리게 세웠기에, 각각의 면을 보면 마치 왼쪽을 향해 널찍한 모서리 기둥을 하나씩 조각한 것처럼 보인다. 덮개돌은 4장의 널돌로 이루어졌으며, 밑면에는 쇠시리인 부연(副椽)이 새겨져 있지만, 윗면은 아무런 조각없이 평평한 편이다.

탑신부(塔身部)는 크기에 따라 몇 개의 돌을 맞추어 놓아, 전체적으로 무질서하게 보인다. 곧 1층 몸돌은 4장의 널돌로 조립되었는데, 커다란 널돌을 동서 방향으로 놓고서 그 사이에 작은 널돌을 끼운 모습이다. 3층 몸돌 역시 4장의 널돌로 이루어졌는데, 1층 몸돌과 정반대로 큼직한 돌을 남북 방향으로 놓고서 그 사이에 작은 돌을 동서 방향으로 하나씩 끼워 놓았다. 이에 반해 2층과 4층, 5층 몸돌은 하나의 돌을 놓았다. 몸돌에는 받침돌의 면석처럼 모서리 기둥의 표시가 전혀 없다. 지붕돌의 구성도 몸돌과 비슷하여, 1~2층 지붕돌은 2장의 돌로 이루어졌지만, 3층 이상의 지붕돌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지붕돌 밑면 받침은 1~2층이 5단이고, 3~4층은 4단이며, 5층은 3단으로 점차 줄어들었다. 지붕돌 윗면에는 각진 1단의 굄이 새겨져 윗층의 몸돌을 받치고 있는데, 이 굄대의 윗면은 윗층 몸돌이 꼭 끼도록 얕게 패여 있어 주목된다. 이러한 장치는 지붕돌 아랫면에도 설치되어 아래층 몸돌이 꼭 끼도록 하였다. 낙수면은 경사가 급하며, 네 귀퉁이의 전각(轉角)에는 반전이 없는 편인데, 특히 지붕돌 밑면 받침이 추녀 끝까지 나와 있어 둔중한 모습을 면하지는 못하고 있다. 상륜부에는 5층 지붕돌 윗면의 가운데 부분에 찰주(擦柱)를 꽂았던 지름 12㎝ 정도의 둥근 구멍이 남아 있을 뿐, 다른 석재는 없어졌다.

이 석탑은 기단부(基壇部)나 탑신부가 가지런하지 못하고 여러 곳에 거친 수법이 보인다. 하지만 받침돌이나 몸돌, 지붕돌의 체감 비례가 적절해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잘 잡히고 안정감이 있는 모습이다. 건립 시기는 단층 받침돌의 구성 양식과 몸돌이나 지붕돌의 조립 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 중기로 추정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




청주계산리오층석탑(淸州山里五層石塔) 

보물 제511호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계산리 산 46-3

계산리의 말미장터 남쪽 언덕의 밭 가운데에 서 있는 탑으로,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基壇)은 가운데돌이 서로 엇갈려 짜였으며 아무런 조각이 없다. 탑신(塔身)은 1층과 3층의 몸돌은 4장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2층과 4·5층의 몸돌은 하나의 돌로 구성하였다. 지붕돌은 1·2층이 2장의 돌로 이루어져 있고, 3층 이상은 한 돌이다. 지붕돌 아래받침은 1·2층이 5단, 3·4층이 4단, 5층은 3단으로 줄어들었다. 
지붕돌의 윗면(낙수면)은 경사가 심하며, 지붕돌 아래의 받침은 처마끝까지 나와 있어 둔중한 느낌이 들지만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잡히고 안정감이 있다. 

이 탑은 고려 중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위아래 지붕돌의 체감률이 정연하여 전체적인 안정감이 느껴지는 우수한 작품이다. 
*문화재청자료*




청주계산리오층석탑(淸州 桂山里五層石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계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오층석탑. 1969년 7월 18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 초기~중기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이다. 계산리 일대는 고려시대 사찰이 있었던 곳인데 현재 터는 남아 있지만 사찰건물은 모두 소실되어 없고 몇 점의 기와조각이 발굴되어 사찰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유적으로는 오층석탑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탑은 고려시대에 건립되었지만 건립양식은 신라시대 석탑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넓은 지대석 위에 하대석을 놓고 면석(面石)은 4매석으로 짰는데, 우주(隅柱)나 탱주형(撑柱形) 표현이 없는 단조로운 형식이다. 갑석(甲石) 또한 두껍고 밑에는 부연(附椽)이 있으나 위의 탑신 굄은 생략되었다. 탑신부 가운데 초층 탑신은 4매석으로 짜고 그 이상은 1석씩이다. 옥개(屋蓋)는 초층과 2층이 2매석이고 그 이상은 1석씩이다. 탑신은 각층에 우주형 표현이 없음은 기단부와 같다. 초층 탑신의 높이가 얕아서 옥개가 오히려 더 높아졌고 이러한 비례는 2층 이상도 마찬가지여서 안정감이 감소되었다. 옥개는 두껍고 옥개받침은 1·2층이 5단, 3·4층이 4단, 5층이 3단이며 낙수면(落水面)은 급경사를 이루고 추녀의 반전도 거의 없다. 

현재 남아있는 탑의 높이는 약 5.7m이지만 소실된 상륜부까지 고려하면 약 8m 높이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석탑의 구성이나 조각된 모습으로 보아 고려시대 초기~중기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1969년 7월 18일 '청원 계산리 오층석탑'이라는 명칭으로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2015년 9월 25일 명칭이 '청주 계산리 오층석탑'으로 변경되었다.
*두디피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