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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용주사동종(華城 龍珠寺 銅鍾).경기 본문

☆~ 풍경소리/경 기

화성 용주사동종(華城 龍珠寺 銅鍾).경기

沈香* 2026. 1. 29. 08:52

 

 

 

 

 

 

 

 

 

 

 

 

 

 

 

 

 

 

 

 

 

 

 

 

 

 

 

 

 

 

화성 용주사동종(華城 龍珠寺 銅鍾)

경기도 화성시 용주사에 있는 고려시대 범종.

196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고려 전기의 동종으로서는 드물게 보는 거종이며 신라 동종의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동종의 정상에는 용뉴(龍?)와 용통(甬筒)을 갖추었고, 특히 용통은 세잔한 연주문(聯珠文)으로 돌려서 6단으로 구분하고 당초문(唐草文)과 연판(蓮瓣)으로 장식하였는데, 연판은 원형, 반원형, 타원형 등 여러 형태이다. 종정(鐘頂)의 천판(天板)에는 문양이 없으며 상대(上臺)와 하대(下臺)의 문양은 서로 다른 형태의 문양대로 장식하였다.

다만 동일한 것은 상대·하대 유곽(乳廓)·당좌(撞座) 등의 내외 둘레만 세잔한 연주문대로 하였고 그 내부에 화려한 문양대로 장식한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상대의 문양은 반원권(半圓圈) 문양을 상하 엇갈려서 장식하고 그 사이사이에 당초문으로 장식하였으며, 하대의 문양은 상대와 달리 연속되는 당초문으로 장식한 것이 다르다. 특히, 하대의 당초문에 있어서 당초가 한번 선곡(旋曲)하는 중앙에 8판 혹은 9판의 연화문을 독립시켜 배치한 것이 이색적이다.

유곽 역시 연주문대 내에 당초문으로 장식하였고, 유두(乳頭)는 원형의 연판좌 위에 돌기된 9개의 유두를 가지고 있다. 4개소의 유곽 밑으로 원형의 당좌를 배치하고 있는데, 연화를 주문양으로 하고 그 둘레에 연주문대를 돌리고 다시 당초문으로 돌린 다음 또다시 연주문대로 조식하였다. 종신(鐘身)에는 천의를 날리며 승천하는 비천상(飛天像)과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채 두광을 갖추고 합장하여 승천하는 3존상을 교대로 배치한 특수한 양식이다.

원래 이 동종은 무명종(無銘鐘)이었으나, 후각한 명문이 있어 이에 따라 854년(문성왕 16)에 주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이는 동종의 형태와 일치하지 않는다. 종신의 1개소에는 32자의 명문이 각명(刻銘)되어 있고, 또 1개소에는 55자의 명문이 각명되어 있다. 또한 이 동종은 신라 동종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고려 전기의 종으로, 반원권 문양을 상대에 장식하고 있는 점은 주목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

    
화성 용주사동종(華城 龍珠寺 銅鍾)
국보
경기 화성시 송산동 188 용주사  

신라 종 양식을 보이는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거대한 범종으로, 높이1.44m, 입지름 0.87m, 무게 1.5톤이다. 

종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 주는 용통이 있고,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두 발로 힘차게 몸을 들어 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어깨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있는데, 아래 위 서로 어긋나게 반원을 그리고 그 안에 꽃과 구슬무늬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다. 이 띠는 사각형 모양의 유곽과 한 면이 붙어 있다. 

4곳의 유곽 안에는 9개의 돌출된 연꽃 모양의 유두가 있는데, 남아 있는 것은 1곳 뿐이다. 종의 몸체 앞뒤에는 비천상을, 좌우에는 삼존상(三尊像)을 두었고, 4곳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두었다. 비천상과 삼존상은 모두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으로 옷자락이 가볍게 날리고 있다. 종 입구 부분의 넓은 띠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어깨띠와는 다르게 덩굴무늬를 두고 있어 이 종의 특징이 되고 있다. 

종 몸체에 통일신라 문성왕 16년(854)에 조성된 것이라는 후대에 새긴 글이 있으나, 종의 형태와 문양이 그 시대와 일치되지 않아 학계에서는 고려 전기의 종으로 추정하고 있다. 용통에 약간 금이 가고 유두가 부서진 것 외에는 보존 상태가 좋으며, 조각한 수법이 뛰어나 고려 종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국가유산포털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