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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保寧 聖住寺址 石佛立像).충남 본문

☆~ 풍경소리/충 남

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保寧 聖住寺址 石佛立像).충남

沈香* 2026. 3. 18. 19:07

 

 

 

 

 

 

 

 

 

 

 

 

 

 

 

 

 

 

 

 

 

 

 

 

 

 

 

 

 

 

 

 

 

 

 

 

 

 

 

 

 

 

 

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保寧 聖住寺址 石佛立像) 

충청남도 보령시 보령 성주사지에 있는 고려 전기 불상.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保寧聖住寺址石佛立像)은 보령 성주사지의 강당지(講堂址) 동쪽 측면에 세워져 있는 석불입상이다.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은 중문지(中門址)가 있는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현재의 자리는 본래의 위치는 아니다. 2010년대 전반기까지 무릎 아래가 땅 속에 묻혀 있었으나 근래 석불을 정비하면서 방형의 대석 위에 올려놓았다.

얼굴은 타원형인데 마멸이 심하여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머리 위에는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머리 모양은 머리카락이 없는 소발(素髮)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마 위쪽에 나발(螺髮)[부처의 머리털.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라 하여 이렇게 이른다.]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본래 돌출된 나발 형태의 머리카락 표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귀는 두텁게 조각된 채 어깨 아래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목은 부러졌던 것을 시멘트로 수리해 놓았으나 삼도(三道)[불상 목 주위에 표현된 3개의 주름으로, 생사(生死)를 윤회하는 인과(因果)를 나타내며 혹도(惑道) 또는 번뇌도(煩惱道), 업도(業道), 고도(苦道)를 의미함]의 표현이 선명하다.

가슴에는 사선으로 흘러내리는 내의(內衣) 표현이 있으며, 법의(法衣)는 양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通肩) 형식의 대의(大衣)를 착용하고 있다. U자형 옷 주름은 가슴부터 무릎 아래까지 흘러내리고 있으나, 복부 부분은 파손이 심하여 정확한 옷 주름의 형태가 파악되지 않는다. 석불의 옷 주름은 전면과 측면까지만 표현되어 있으며 후면은 거칠게 정다듬으로 마감하였다.

석불입상의 후면 마감을 거칠게 다듬어 놓는 사례는 통일 신라 석불보다 고려 시대 석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마감 처리 방법이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아래로 내려뜨리고 있으며, 왼손은 복부에 올려 놓은 형태이나 손 역시 파손되어 있다. 왼팔 아래로는 옷자락이 길게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무릎 아래가 완전히 노출된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은 전체 높이 약 2.5m 가량의 대형 석불입상이다. 왼쪽 겨드랑이 부근과 팔꿈치 주변의 옷 주름이 리본 모양으로 표현된 점이 주목되는데, 이러한 표현은 주로 고려 초기 조성된 철불(鐵佛)의 옷 주름 등에서 확인되는 옷 주름 묘사 방법이다. 볼륨감보다 수직적인 이미지가 강조되어 있으며, 석불입상의 뒷면을 간결하게 처리하고 있는 점, 왼쪽 팔에 나타난 옷 주름 등의 특징을 보았을 때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의 조성 시기는 고려 전기로 추정할 수 있다.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은 성주사(聖住寺)의 시대별 변천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석불이다. 2000년 9월 2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保寧 聖住寺址 石佛立像)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5  

성주사지내 강당지 동편에 있는 석불입상으로 얼굴이 타원형으로 인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얼굴부위, 목부위, 가슴부위가 일부 훼손되어 있으며 지대석의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어느시기에 옮겨온 것으로 추정하며, 조성시기는 조선시대 중·후반기에 조각한 것으로 보여진다. 
*국가유산포털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