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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그리고 흔적.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原 到彼岸寺 鐵造毘盧舍那佛坐像).강원 본문

☆~ 풍경소리/강 원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原 到彼岸寺 鐵造毘盧舍那佛坐像).강원

沈香* 2026. 4. 7. 19:35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原 到彼岸寺 鐵造毘盧舍那佛坐像) 

높이 91cm,국보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장흥 보림사 철불(국보)와 함께 9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철불이다.다만 보림사 철불보다 몸집이 빈약하고 얼굴의 세부 윤곽이 섬약하다.육계의 표현이 분명하지 않은 점,계란형의 단정한 얼굴에 퍼진 은은한 미소는 생동감대신 수도하는 스님을 대하는 듯 친근감이 있다.가슴.손.다리의 표현에 양감이 부족하고,양쪽 어깨를 감싼 통견의 법의는 얇게 빚은 듯한 평행이 옷주림이 넓게 파인 가슴으로 흘러내렸는데,이러한 옷주름은 9세기 후반 불상에 나타나는 특징적 형식이다.양손은 지권인(智拳印)을 해 비로자나불상임을 나타내고 있다.

당시 유행하던 철로 조성했으며 섬약하고 평판적인양식은 9세기 후반 무렵 불상의 한 형식을 정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보림사 철불처럼 조성기(造成記)도 있따.철불 뒷면에 "1500명의 향도(鄕徒)가 결연(結緣)하여 조성했다"는 기록과 함께 새겨진 100여 자의 명문 가운데 咸通六年己酉正月(함통 6년 기유 정월)이라는 문구가 있어 865년(경문왕 5)에 이 불상이 탄생했음을 알게 한다.858년에 조성된 보림사 철불과 함께 신라 하대의 새로운 양식을 대표하는 불상이 된 것이다.

신라 말기의 철불 조성은 수도 경주를 벗어나 전남지방을 비롯한 변방으로 확산돼나갔다.도피안사 철불도 북으로 치닫는 강원도 철원지방에서 조성되어 주목을 끈다.더구나 향도 1500명은 멱거사(覓居士)를 비롯한 일반 호족과 일반 농민들까지 포함되는 수였을 것이므로 새롭게 변한 신앙형태를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9세기에 대두한 지방호족과 그들을 깊이 이해하고 상호 존재를 인정하던 선종사상의 유연함은 당시 사회제도를 뒤엎는 파격이 전제돼 있었다.그리하여 선사상은 호족들의 감정과 염원을 충족시키기에 안성맞춤이었다.문화의 흐름은 그렇게 중앙귀족에서 지방호족으로 전이되었다.이때 그들의 손으로 조성된 철불은 곧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새로운 변혁의 의지를 키우던 호족들의 이상형이면서 자화성이었던 것이다.

시대에 따라,만든 이의 심성에 따라 불상의 이미지가 다르게 표현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도피안사 철불은 권위도 위엄도 없이 섬약하고 평이하지만 친근한 민간인의 인상을 풍기면서 당당하고 씩씩하며 약간은 도적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불상의 광배는 당초부터 없었는지 알 수 없으나,대좌는 수미단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다.활짝 핀 연꽃 끝부분만 수미단 위로 간신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데,매우 공력을 들여 조성한 대좌임을 어렴풋이 짐작할 따름이다.일부러 수미단을 뚫어 대좌를 내려놓은 까닭은 무엇일까.상중하대로 이뤄진 8각 연화대좌는 철불과 함께 신라 하대의 대표적 대좌로 손꼽히고 있으나 불상과 대좌가 조화를 이룬 완결체를 볼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原 到彼岸寺 鐵造毘盧舍那佛坐像)   
국보
강원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450 도피안사  

강원도 철원군 화개산에 자리잡은 도피안사는 신라 경문왕 5년(865)에 도선대사가 창건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도선대사가 철조비로자나불을 만들어 철원의 안양사(安養寺)에 모시려고 했으나 운반 도중에 불상이 없어져서 찾아보니 도피안사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절을 세우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신라말에서 고려초에는 철로 만든 불상이 크게 유행했는데, 이 작품은 그 대표적인 예로,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臺座)까지도 철로 만든 보기 드문 작품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갸름한 얼굴은 인자하고 온화한 인상이다. 평판적인 신체에는 굴곡의 표현이 없고, 양 어깨를 감싼 옷에는 평행한 옷주름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었다. 

몸에 비해 가냘픈 손은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양으로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이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이 시기에 가장 유행한 형태로, 상대와 하대에는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중대는 8각을 이루고 있다. 

불상 뒷면에 신라 경문왕 5년(865)에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남아 있어서 만든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철조비로자나불상의 새로운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능숙한 조형수법과 알맞은 신체 비례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국가유산포털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