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
| 5 | 6 | 7 | 8 | 9 | 10 | 11 |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 26 | 27 | 28 | 29 | 30 | 31 |
- 영월군 문화재
- #대구광역시 문화재
- 영광군 문화재
- 전남 해남
- 충북 충주
- 조선시대 건축물
- 울산광역시 문화재
- 영주시
- #괴산군 문화재
- 비지정문화재
- 김제시 문화재
- 충주시 문화재
- #안성시 문화재
- 고려시대 당간지주
- 울주군 문화재
- 원주시 문화재
- 충남 홍성군 문화재
- 청주시 문화재
- #영양군 문화재
- #경주시 문화재
- 양산 통도사
- 고려시대 석탑
- 경상북도
- 익산시 문화재
- 문화유산답사
- 국립중앙박물관
- 보물
- 답사여행
- 유형문화유산
- #부여군 문화재
- Today
- Total
열정,그리고 흔적.
영주 금성대군 신단(榮州 錦城大君 神壇).경북 본문













영주 금성대군 신단(榮州 錦城大君 神壇)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조선후기 단종복위운동 관련 신단.
개설
200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유적지에는 금성대군의 신단과 순의비(殉義碑)가 있으며 금성대군과 함께 처형당한 이보흠과 지역 선비들을 추모하기 위한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지방 유림들이 제사를 지낸다.
『순흥읍지』에 따르면 금성대군신단을 처음 조성한 사람은 홍천군현감 이대근으로 비밀리에 단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1691년(숙종 17)에 사육신이 복직되자 1693년(숙종 19) 부사 정중창이 금성대군이 유배되었던 자리에 처음으로 단(壇)을 쌓았다고 한다. 이후 1719년(숙종 45)에 부사 이명희(李命熙)가 상소하여 3개의 단으로 고쳤고, 1742년(영조 18)에는 경상감사 심성희(沈聖希)가 단소(壇所)를 정비하였다. 1980년에는 신단 앞에 제청(祭廳)과 주사(廚舍)를 건립하였다.
금성대군(1426-1457)은 세종의 여섯째 아들이자 단종의 숙부이다. 1456년(세조 2) 사육신(死六臣)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추진하다 순흥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금성대군은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 및 지역 사족(士族)들과 더불어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사전 밀고로 발각되어 사약을 받고 죽었다. 숙종연간에 금성대군과 함께 순절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단(壇)을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성대군신단은 2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사주문을 들어서면 제청과 주사가 마주하고 있고 일각문으로 들어가면 토석담장 안에 신단이 조성되어 있다. 기단은 장대석으로 조성하였으며 기단 앞 3곳에 계단을 설치했다. 기단 위에는 품(品)자 형으로 돌로 만든 3개의 단이 조성되어 있다. 금성대군의 신단은 중앙 뒤쪽에 있는 단으로 서쪽에는 금성대군성인신단지비(錦城大君成仁神壇之碑, 높이 140㎝, 폭 55㎝, 두께 24㎝)가 있다. 금성대군 신단 앞에 있는 동쪽 단은 이보흠을 모신 단이며, 서쪽 단은 함께 순절한 선비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단이다.
금성대군신단은 단종 복위운동과 관련된 유적으로 18세기 국왕에 대한 의리가 강조되고, 탕평정치가 활성화되는 역사적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당시 인신(人神)을 위해 설치한 제단의 사례는 극히 드물고 제단도 잘 보존되어 있는 등 조선 후기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유적으로 평가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영주 금성대군 신단 (榮州 錦城大君 神壇)
사적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70번지 일원
신단은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려는 목적으로, 흙이나 돌로 쌓아 올려 주변보다 높게 만든 단(壇)을 말한다.
금성대군(錦城大君, 1426~1457)은 조선 세종의 여섯째 아들로, 단종의 작은아버지이자 세조의 동생이다. 금성대군은 조선 세조 2년(1456)에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 운동을 추진하다가 순흥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순흥 부사 이보흠 및 지역 사림***과 함께 다시 단종 복위를 계획하였다. 그러나 사전에 발각되어 거사를 추진했던 사람들과 같이 죽임을 당했고 순흥부도 폐지되었다.
조선 숙종 9년(1683)에 이르러서야 순흥부가 다시 설치되었고 금성대군을 비롯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신분도 복원되었다. 그리고 숙종 45년(1719)에는 순흥 부사 이명희의 요청으로 사건과 관련된 옛터인 유허지(遺墟址)에 제단을 설치하였다.
이곳 단소는 돌로 만든 3개의 제단을 품(品)자처럼 배치한 모양으로 되어 있다. 앞의 동쪽 제단은 이보흠을 모신 단이고, 서쪽 제단은 함께 죽은 선비들을 추모하는 단이다. 마지막으로 중앙 뒤쪽에 있는 제단이 바로 금성대군 신단이다. 당시 순흥에서는 금성대군을 신령처럼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제단에는 신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조선 영조 18년(1742)에는 경상 감사 심성희가 요청하여 제사를 모시는 단소를 정비하였다. 1980년 무렵에는 단소 앞에 제사를 지내는 건물인 재청(祭廳)과 제사를 준비하는 건물인 주사(廚舍)를 건립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현재까지도 이곳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유림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금성대군 신단은 단종 복위 운동과 관련된 유적으로 18세기 탕평 정치가 활발하였고 왕에 대한 의리를 다시 강조하는 정치적 분위기와 관련이 깊은 곳이다. 조선 시대에 사람을 신격화하여 만든 제단이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이 제단은 당시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국가유산포털자료*
'☆~ 풍경소리 > 경 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주 초암사 동부도(榮州 草庵寺 東浮屠).경북 (0) | 2026.06.06 |
|---|---|
| 영주 초암사 삼층석탑(榮州 草庵寺 三層石塔).경북 (0) | 2026.06.05 |
| 영주 부석사 동.서 부도전(榮州 浮石寺 東.西 浮屠殿) (0) | 2026.06.02 |
| 영주 부석사 원융국사비(榮州 浮石寺 圓融國師碑).경북 (0) | 2026.06.01 |
|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榮州 北枝里 石造如來坐像).경북 (0) | 2026.05.3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