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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 사리탑(慶州 佛國寺 舍利塔).경북 경주 본문

☆~ 풍경소리/경 북

경주 불국사 사리탑(慶州 佛國寺 舍利塔).경북 경주

푸른새벽* 2006. 5. 7. 23:37

 

 

 

 

 

 

 

 

 

 

 

 

 

 

 

 

 

 

 

 

 

 

경주 불국사 사리탑(慶州 佛國寺 舍利塔.광학부도)

 

불국사  비로전 옆에 있는 고려시대의 화강석 사리탑이다.보물 제61호. 높이 2.06 m.

 

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여겨왔으나,하대(下臺)의 안상(眼象)수법, 중대석(中臺石)의 운문(雲文)수법과 탑신의 감실(龕室) 주연선(周緣線)이 여대(麗代)의 윤곽선과 흡사하여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외형이 석등과 흡사하며 사적기(寺蹟記)에는 ‘광학부도(光學浮屠)’라 기록되어 있다.장식이 화려하고 섬세 할  뿐만 아니라 전체가 조화있는 빼어난 작품이다.일제 강점기인 1906 년 일본으로 반출된 후 동경 우에노 공원 근처의 精養軒 이라는 요릿집 정원에 있었다 한다

 

1909 년 세끼노 라는 일본인이 제자리에 돌려줄것을 요청하였으나 부도는 요릿집에서 딴 데로 팔려가고 행방을 잃었다고 한다.세끼노의 끈질긴 노력끝에 20 년 만인 1933 년 7 월에 불국사로 반환 되었다

 

세끼노는 일제의 강점기가 36 년만에 끝난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그렇게 끈질기게 반환하려고 했을까

 

광학부도는 일본에 실려갔다가 다시찾은 미술품 도난사의 대표적 사례이다.다른 절집의 부도와는 달리 그래서 울안(?) 에 가두어 두었을까...('답사여행의 길잡이 '중에서)

 

 

 

경주 불국사 사리탑(慶州 佛國寺 舍利塔)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에 있는 고려시대 사리탑. 19631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의 비로전 왼쪽 보호각에 보존되어 있는 고려시대 사리탑이다. 불교에서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불탑과 승려의 사리를 모시는 승탑(부도)으로 나누어진다불국사사적기(佛國寺事蹟記)에 기록되어 있는 광학부도(光學浮屠)’가 경주 불국사 사리탑을 가리킨다는 주장이 있어, 경주 불국사 사리탑을 승탑으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현재까지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사리탑 건립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정확한 제작 배경은 알 수 없으나, 전체적인 조형 기법을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905년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어 도쿄 우에노공원 지역의 한 요릿집에서 발견되었고, 이후 다시 행방불명되었다가 1933년 불국사로 반환되었다. 불법 반출 이전에는 비로전 앞에 사리탑이 위치했으나, 현재는 비로전의 좌측으로 자리를 옮겼다.

 

붉은색 화강암으로 제작된 석등 모양의 사리탑이다. 높이는 2.06m이고, 기단부·탑신부·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부는 하대석·중대석·상대석을 얹어 구성했다하대석은 2단으로 이루어졌으며, 하단에는 각 면에 안상(眼象)을 새긴 8각의 돌을 두었고, 상단에는 복련(覆蓮)을 새긴 반구형의 돌을 얹었다중대석에는 구름 문양을 조각하였으며, 상대석에는 반구형의 돌에 앙련(仰蓮)을 새겨 하대석과 대칭을 이루었다.

 

탑신부는 승려의 사리를 보관하는 곳으로, 경주 불국사 사리탑의 탑신은 가운데가 볼록한 원통 모양으로 제작되었다. 연꽃과 보상화로 장식한 기둥으로 탑신부를 네 면으로 나누었고, 각 면에는 감실(龕室)을 파고 그 안에 여래좌상(如來坐像) 보살입상(菩薩立像)을 새겨 넣었다. 지붕돌(옥개석)은 추녀 끝부분은 12각을 이루지만, 위쪽으로 가면서 6각을 이루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지붕의 밑면에는 연꽃 문양이 조각되었으며, 현재 지붕돌의 절반이 부서진 상태이다.

 

상륜부에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 등이 차례로 올려져 있다

 

주 불국사 사리탑은 기존 통일신라시대 사리탑에서 보지 못한 독특한 형식으로 제작되어 통일신라시대 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비록 상륜부와 지붕돌 일부가 훼손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원형의 모습이 잘 보전되어 있고, 기단부와 탑신부에 조각된 문양들은 화려하고 섬세하게 조각되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불법으로 반출되었다가 반환된 문화재로, 당시 혼란스러웠던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19631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두산백과사전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