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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호기심/나무 이야기

자귀나무

푸른새벽* 2006. 8. 7. 11:16

 

 

 

 

 

자귀나무


초여름의 숲 속에서 짧은 분홍 실을 부챗살처럼 펼쳐 놓은 듯한 자그마한 꽃들이 피어
주위를 압도하는 꽃나무가 바로 자귀나무다
손톱 반쪽 크기나 됨직한 자그마하고 길쭉길쭉한 잎들이 서로 어긋나기로 마주 보면서
촘촘히 달려 있는 모양이 앙증맞기까지 하다
몇몇 지방에서는 소가 잘 먹는다 하여 소밥나무 혹은 소쌀나무라고도 한다


초등학교 앞 노점상의 인기 품목이었던 신경초란 풀이 있다
건드리기만 하며 금세 벌어졌던 잎이 오므라든다
광합성을 할 때 외에는 날아가버리는 수분을 줄여 보겠다는 신경초 나름대로의 속셈이다
자귀나무는 신경초처럼 건드릴 때마다 일일이 경망스럽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긴긴 밤에는 서로 마주보기로 붙어 버린다
이렇게 잠자는 운동이 특기이다
50~80개나 되는 작은 잎들이 서로 마주보기로 붙었을 때
모든 잎이 다 짝이 있다는 사실 또한 퍽 재미있다
그러니 자연히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는 나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름이 합환수(合歡樹).야합수(夜合樹)이며 정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해가 있을 동안에는 잎이 마주 붙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구름이 끼어서 아무리 컴컴할지라도 낮에는 잠자리에 들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사람들에게 절도 있는 부부생활을 권하는 것이 아닐까?


우스개로 잠자는 데 귀신 같다 하여 자귀나무란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그러나 나무 깎는 연장의 하나인 자귀의 손잡이,
즉 자귀대를 만들던 나무란 뜻으로 자귀나무가 되었다는 설명이 더 타당한 것 같다


옛날 중국에서 두양이라는 사람의 부인은 해마다 5월 단오에 자귀나무의 꽃을 따서 말린 다음
베개 속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남편이 언짢아 하는 기색이 보일 때마다
이 꽃을 조금씩 꺼내어 술어 넣어서 한 잔씩 권했다고 전해진다
그 술을 마신 남편은 금세 기분이 풀어졌으므로 부부간의 사랑을 두텁게 하는 신비스런 비약이라하여
사람들이 앞다투어 그 비방을 따라했다고 한다


겨울이 되면 콩꼬투리처럼 생긴 그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서 수없이 달리는데
세찬 바람이 부딪쳐 달그락 달그락하는 소리가 옛 양반들의 귀에 꽤나 시끄럽게 들렸나 보다
그래서 여설수(女舌樹)란 이름도 붙었다
요즘 같으면 어림없는 이름이다
그러나 퇴계 이황이
"무릇 여자란 나라 이름이나 알고 제 이름 석자나 쓸 줄 알면 족하다" 고 하던 시절이니
여자들의 혀가 제대로 대접받았을 리 만무하다


나무껍질은 합환피라 하는데
조선시대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에 보면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근심을 없애서 만사를 즐겁게 한다"고 한다
또 민간에서는 이 껍질을 갈아서 밥에 개어 타박상,골절,류머티즘에 바르면 잘 듣고
나뭇가지를 태워 술에 타서 먹으면 어혈 등에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자귀나무는 황해도 이남에 주로 분포하는 잎떨어지는 넓은잎 중간키나무로서
그렇게 크게 자라지는 않으나 깊은 산 속에서는 10여 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나무껍질은 회갈색이며 나이를 먹어도 흉하게 갈라지지 않고 다만,
작고 동글동글한 숨구멍만이 촘촘히 생긴다
잎자루는 가지에 어긋나기로 붙어 있는데
큰 잎자루에서 또 한 번 거 갈라져서 두 번 갈라지는 셈이 된다
잎자루와 달리 잎은 서로 맞닿기 좋게 마주보기로 달리는 것이 자연계의 오묘함이다
꽃은 작은 가지 끝에 가느다란 실 모양의 꽃자루가 스무여 개씩 자라서 이루어진다
분홍 꽃이 보통이지만 흰 꽃도 있다


관상수로서 정원,공원에 적당하고 콩과식물이므로 아무데나 심어 놓아도 자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잎,열매,껍질 모두 부부 금실과 관련이 있으며
게다가 꽃까지 아름다운 자귀나무 한 그루를 집 앞마당에 심어 보자
이 시대 최후의 로매티스트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박상진 지음 '궁궐의 우리나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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