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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병산서원 (屛山書院).경북 안동 본문

☆~ 풍경소리/경 북

안동 병산서원 (屛山書院).경북 안동

푸른새벽* 2006. 10. 4. 07:28

 

 

 

 

 

 

 

 

 

 

 

 

 

 

 

 

 

 

 

 

 

 

 

 

 

 

 

 

 

 

 

 

 

병산서원 (屛山書院)


사적  제260호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소재

 

서애 유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안동에서 서남쪽으로 낙동강 상류가 굽이치는 곳에 화산(花山)을 등지고 자리하고 있다.

 

유성룡은 도학·글씨·문장·덕행으로 이름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에도 성곽 수축·화기제작을 비롯하여 군비확충에 힘써 많은 공을 세운 인물이다.

 

원래 풍악서당으로 풍산 유씨의 교육기관 이었는데, 유성룡이 선조 5년(1572)에 이곳으로 옮겼다.


그 후 광해군 6년(1614)에 존덕사를 세워 그의 위패를 모시고, 1629년에 그의 셋째 아들 유진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철종 14년(1863)에는 임금으로부터 ‘병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서원이 되었다.

 

서원내 건물로는 위패를 모신 존덕사와 강당인 입교당,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 기숙사였던 동·서재, 신문, 전사청, 만대루, 고직사가 있다.

 

병산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을 담당해 많은 학자를 배출한 곳으로,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남아 있었던 47개의 서원 중 하나이며, 한국 건축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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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은 1572년 서애 류성룡이 풍산 읍내에 있던 풍산 류씨 교육기관인 풍악서당(豊岳書堂)을
이곳 병산으로 옮겨 지은 것이다


이후 1613년에는 정경세를 비롯한 서애의 제자들이 류성룡을 모신 존덕사(尊德祠)를 지었고
1629년에는 서애의 셋째아들인 수암 류진을 배향했으며
1863년엔 병산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그리고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도 건재한 조선시대 5대 서원의 하나이다
병산서원은 그런 인문적.젹사적 의의말고 미술사적으로 말한다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건축으로 한국건축사의 백미이다
그것은 건축 그 자체로도 최고이고,자연환경과 어울림에서도 최고이며
생생하게 보존되고 있는 유물의 건강상태에서도 최고이고,
거기에 다다르는 진입로의 아름다움에서도 최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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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에 당도하면 몇채의 민가와 민박집 그리고 병산서원 고사(庫舍)가 먼저 우리를 맞이하고
주차장에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모래밭,
앞으로는 잘생긴 강변의 솔밭이 포진하고 오른쪽으로 병산서원이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외견상으로 병산서원은 장해 보일 것도,거해 보일 것도,아름답게 보일 것도 없다
그저 외삼문(外三門)을 가운데 두고 기와돌담이 반듯하게 돌려 있는
여느 서원과 다를 바 없다

 

본래 서원의 구조는 매우 간명하게 되어 있다


1543년 주세붕이 세운 소수서원을 기폭제로 하여
전국으로 퍼져나간 서원은 그 구조가 거의 공식화되었을 정도로 아주 정형적이다


크게 선현을 제사지내는 사당과 교육을 실시하는 강당 그리고 원생들이 숙식하는 기숙사로 이루어진다


이외에 부속건물로 문집의 원판을 수장하는 장판고(藏板庫),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典祀廳),
그리고 휴식과 강학의 복합공간으로서 누각(樓閣)과 어느 건물에나 당연히 있을 뒷간이 있으며
서원을 관리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관리소인 고사는 별채로 구성된다


건물의 배치방법은 성균관 문묘나 각 고을의 향교와 비슷하여
남북 일직선의 축선상에 외삼문,누각,강당,내삼문(內三門),사당을 일직선으로 세우고
강당 앞마당을 좌우로 동제(東齊)와 서재(西齎),
강당 뒤뜰에 전사청과 장판고를 두며 기와돌담을 낮고 반듯하게 두른다


사당과 강당은 구별하여 내삼문 좌우로 담장을 쳐서 일반의 출입을 막는다


강학공간은 선비정신에 입각하여 검소하고 단아하게 처리하여 단청도 금하고 공포에 장식을 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사당은 권위를 위해 단청도 하고 태극문양을 그려넣기도 한다


병산서원 또한 그런 전형적인 서원배치에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다
그러나
병산서원은 주변의 경관을 배경으로 하여 자리잡은 것이 아니라
빼어난 강산의 경관을 끌어안으며 배치했다는 점에서 건축적.원림적 사고의 탁월성을 보여준다

 

 

                               *유흥준 지음 '나의문화유산답사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