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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법천사 지광국사부도(智光國師浮屠).서울 경복궁 본문

☆~ 풍경소리/강 원

원주 법천사 지광국사부도(智光國師浮屠).서울 경복궁

푸른새벽* 2006. 11. 9. 23:57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原州 法泉寺址 智光國師塔)

 

강원 원주 법천사터(法泉寺址)에 있는 지광국사부도비(智光國師浮屠碑)와 짝을 이루고

바로 그 곁에 서 있었을 부도는 현재 경복궁 뜰에 놓여 있다

 

부도비와 함께 고려 선종 2년(1085년)에 세워졌고 지광국사 현묘탑이라 불린다

 

스님의 사리탑이라기보다 불탑과 같은 격을 갖춘 부도로 부도비 못지않게 아름답고 화려하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오사카까지 밀반출되었다가반환되어 이곳으로 옮겨 왔는데

한국전쟁 때 파손되어 1975년 복원한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이 부도의 수난도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 더불어 골이 깊다

 

전체적인 구조는 네모난 2층의 탑과 같은 모양에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페르시아풍의 창과 짧게 늘어진 커튼이 매우 이국적이다

 

지대석과 하대석의 네 모서리 위로는 용의 발톱과 같은 것이 길게 뻗어

견고하게 땅을 짓누르고 있어 기단부의 안정감 있는 무게를 실었다

 

7층을 헤아리는 기단부와 몸돌 지붕과 상륜부를 비롯해 부도 전체에

안상.운문.연화문.당초문.불보살.봉황.신선.문짝.장막. 영락.앙화.복발.보탑.보주와 같은

온갖 화려한 장식과 무늬들이 빈틈없이 새겨져 있다

그들 조각이 하도 섬세하고 정교하여 웅건한 기품보다는 기교 넘치는 아름다움이 더하다

 

팔각원당형이라는 기본형에서 벗어나

이국적인 풍모의 양식에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새로운 양식을 선보이며

우리나라 부도 중 가장 뛰어난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원래 기단 네 모서리에 사자상이 1구씩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높이가 6.1m . 국보 제 101호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原州 法泉寺址 智光國師塔)


국보 제101호
서울 종로구 세종로 1 경복궁 내


이 탑 고려시대의 승려 지광국사 해린(984∼1070)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원래 법천사터에 있던 것인데 일제시대에 일본의 오사카로 몰래 빼돌려졌다가 반환되었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일반적으로 통일신라 이후의 탑이 8각을 기본형으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이 탑은 전체적으로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양식을 보여준다. 바닥돌은 네 귀퉁이마다 용의 발톱같은 조각을 두어 땅에 밀착된 듯한 안정감이 느껴지며, 7단이나 되는 기단의 맨윗돌은 장막을 드리운 것처럼 돌을 깎아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탑신에는 앞뒤로 문짝을 본떠 새겼는데, 사리를 모시는 곳임을 표시하기 위함이다. 지붕돌은 네 모서리가 치켜올려져 있으며, 밑면에는 불상과 보살, 봉황 등을 조각해 놓았다. 머리장식 역시 여러 가지 모양을 층층이 쌓아올렸는데, 비교적 잘 남아있다.


법천사터에는 지광국사의 탑비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탑비를 세운 때가 고려 선종 2년(1085)이므로 묘탑의 조성시기는 국사의 입적 직후인 1070∼1085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탑 전체에 여러가지 꾸밈을 두고,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등 자유로운 양식에 따라 만들어졌는데도, 장식이 정교하며 혼란스럽지 않다. 화려하게 꾸민 장식으로 인해 엄숙한 멋을 줄어들게 하고 있지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탑 가운데 다른 어떤 것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한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기단의 네 귀퉁이마다 1마리씩 놓여 있던 사자상은 일찍이 도둑맞아 지금은 한마리도 남아있지 않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