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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보광사대웅보전(普光寺大雄寶殿).경기파주 본문

☆~ 풍경소리/경 기

파주 보광사대웅보전(普光寺大雄寶殿).경기파주

푸른새벽* 2006. 12. 27. 00:13

 

 

 

 

 

 

 

 

 

 

보광사대웅보전(普光寺大雄寶殿)


대웅보전을 마지막 중창한 기록은 『조선사찰사료』에 있다
1896(고종 33년)에서 1901(고종 38년)사이에 중창했다고 전해져
지금의 건물은 이때 매만져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궁중의 여인네들이 불사(佛事)에 동참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높에 쌓은 석축기단 위에 서향으로 앉은 대웅보전은 다포계 양식의 결처마 팔작집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에 기품이 장중한 건물로 마당 건너 만세루와 마주보고 있다
주춧돌에 맞춰 자연스럽게 깎아 세운 배흘림기둥,
그 위에 인초공을 두어 창방과 평방 머리를 감싸고 있으며
공포 밖으로 나온 쇠서에는 활짝 핀 연꽃과 봉오리를 조각했다
정면 한가운데 영조대왕의 친필로 알려진 '大雄寶殿'편액이 기교없이 단아하고 강건하다


퇴색된 단청도 고스란히 남아 정감이 가고,법당 외벽의 벽화를 보면 더욱 친근감이 든다
법당 외벽을 여느 전각과 달리 흙벽이 아닌 목판으로 대고 벽화를 그렸는데
그림 수법이나 내용이 여느 벽화에서 보기 드문 부처님 전생담과 연화장 세계이고
약간의 민화풍마저 풍기고 있는 것이다
대웅보전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83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보광사 대웅보전(普光寺大雄寶殿)


시도유형문화재 제83호(파주시)
경기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13 


고령산 기슭에 있는 보광사는 통일신라 진성여왕 8년(895)에 왕명으로 도선국사가 지은 사찰이다. 고려 고종 2년(1215)과 우왕 14년(1388)에 다시 지었으나, 임진왜란(1592)으로 모두 불타 없어졌다. 조선 광해군 14년(1622)에 다시 지었으며,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수리를 하였고 새로 건물을 짓기도 하였다. 영조(재위 1724∼1776) 때에는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복을 비는 절로 삼기도 하였다.


보광사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양쪽 옆면과 뒷면은 모두 두꺼운 나무판으로 벽을 만들었는데, 보통의 벽이 회벽인데 비해 특이하며 양 옆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앞면 3칸은 모두 4짝의 문을 달았으며 이 문들은 모두 열어서 들어올릴 수 있도록 짜여졌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앞·뒷면에는 각 칸에 3구씩, 양쪽 옆면에는 각 칸에 2구씩 배치되었다. 그 수법이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게 조각되어 조선 후기의 장식적인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정면의 기둥 위에는 용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내부에는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