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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칠장사혜소국사비(七長寺慧炤國師碑).경기 안성 본문

☆~ 풍경소리/경 기

안성 칠장사혜소국사비(七長寺慧炤國師碑).경기 안성

푸른새벽* 2006. 12. 29. 00:06

 

 

 

 

 

 

 

 

 

 

 

혜소국사비(慧炤國師碑)


칠장사 대웅전 왼쪽으로 꺾어 돌아 야트막한 언덕위에 혜소국사(972~1054)비가 있다
안성에서 태어나 칠장사의 조사를 지내고 여기서 생을 마친 혜소국사를 기념하기 위해
고려 문종 14년(1060)에 세운 비이다


혜소국사의 비가 세워진 지 950여년, 비각 비는 현재 세 부분으로 해체되어 있다
왼쪽부터 비신.귀부.이수가 각각 옆으로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얼른 보아도 비신은 날렵한데,그에 비하면 대좌와 머릿돌의 규모가 엄청나다
머릿돌에 못 이겨 비신이 쓰러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봄직하다


높이 2.27m,폭 1.27m의 검은 대리석(烏石)비신은 양 옆면 아래위로 길게 여의주를 희롱하는 쌍룡을 새겼는데
생동감 있는 조각솜씨가 볼 만하다
비신은 중간에서 부러져 보수의 힘으로 버텨내고 있으나 비문은 성해 판독이 가능하다
김현(金顯)이 짓고,민상제(閔賞濟)가 쓰고 전액을 하였으며,각은 배가성(裵可成).이맹(李孟)등이 했는데
구양순법의 해서체로 굳세고 엄정하다


귀부와 이수의 생김새가 웅장하고 화려하다
거북의 등은 방원형에 육각의 갑문(甲文)이 뚜렷하고 머리와 꼬리,네 개의 발에는 물결무늬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머리를 치켜들고 코를 한껏 벌름거리며 부리부리한 눈망울로 쏘아보는 거북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다
비신이 안치된 자리는 소담스런 복련으로 조각했다


운무 속에 꿈틀거리는 거대한 이수의 용이 사실감을 준다
머릿돌 가운데로는 비가오면 물이 빠져나가도록 구멍을 내었다
탑의 상륜부에 있는 보주와 같은 연꽃돌이 올라가 있는데 원래 이수에 있었던 것은 아닌듯이 보인다
현존하는 크고 화려한 비 중의 하나로 보물 제 488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칠장사혜소국사비(七長寺慧炤國師碑)


보물 제488호 
경기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2 칠장사 경내 


혜소국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혜소국사는 고려 광종 23년(972)에 안성에서 출생하여, 10세에 출가하였으며 17세에 융천사(融天寺)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국사는 말년을 칠장사에서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한다.


현재 비는 비받침인 귀부(龜趺)와 비몸돌·머릿돌이 각각 따로 놓여 있는 상태이다. 흑대리석으로 만든 비몸돌의 양쪽 옆면에는 상하로 길게 두 마리의 용을 새겨 놓았는데 그 솜씨가 뛰어나다. 비문에는 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씨에서는 고려인다운 뛰어난 풍모가 느껴진다.


문종 14년(1060)에 세워진 이 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의 장수인 가토가 이 절에 왔을 때, 어떤 노승이 홀연히 나타나 그의 잘못을 꾸짖자 화가 난 가토가 칼을 빼어 베었다. 노승은 사라지고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리니 가토는 겁이 나서 도망을 쳤다 한다. 현재 이 비의 몸돌이 가운데가 갈라져 있어 이러한 이야기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