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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녕전(永寧殿).서울 종묘 본문

☆~ 바람소리/궁궐(宮闕)

영녕전(永寧殿).서울 종묘

푸른새벽* 2007. 2. 16. 00:17

 

 

 

 

 

 

 

 

 

 

 

 

 

 

 

 

 

 

 

 

 

 

 

 

 

영녕전(永寧殿)


세종 때에 이르러 정종이 승하하고 3년 상(喪)이 지나자 종묘의 신실에 여유가 없어,정종의 신위를 봉안할 수 없게 되었다.이때 논의를 거듭하여, 중국 송나라의 제도(별묘를 세워 추존 4조를 봉사함)가 시의(時宜)에 따라 정전 서쪽에 별묘를 새로 지어 그 이름을 영녕전이라 하였다.'永寧'이라는 이름은 조종(祖宗)과 자손이 길이 평안하라는 의미이다.세종 3년 10월에 창건된 영녕전의 규모는 태실 4칸에 좌우 익실 각 1칸씩으로 모두 6칸이었다.영녕전 낙성과 더불어 목조의 신위를 제1실에 이안(移安)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미 정전에 모시고 있던 4조(목조.익조.도조.환조)의 신주를 모두 이곳으로 옮겼다


영녕전 역시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즉위년(1608)에 중건되었다.이때는 태실 4칸에 동서 익실 3칸씩 모두 10칸 규모였다.현종 8년(1667)에 다시 좌우 익실 각 1칸씩을 중건하여 12칸 건물이 되었다가,헌종 2년(1836)에 역시 중건되었는데,이때도 좌우 익실을 각각 2칸씩 늘렸다.이 규모,즉 태실 4칸 좌우 익실 각각 6칸씩 모두 16칸이 영녕전의 현재 규모이다


영녕전의 구성은 정전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네 면을 담장으로 둘러막아 의례를 거행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고,
정면인 남쪽에 삼문 형식의 신문을,동쪽에는 3칸 규모의 동문을,그리고 서쪽에는 1칸 짜리 서문을 두었다.다만,정전의 문 배치와 다른 점은 서쪽 담장의 남쪽 방향 끝과 동문의 북쪽 방향에 자그마한 일각문 하나씩이 나 있다는 것이다


남쪽 신문을 들어서면 장대석 두 벌을 쌓아 하월대를 조성하고 그 가운데 신로를 형성하였다.신로 끝에는 다시 단을 높여 상월대를 쌓았다.이 상월대 위에 장대석 한 벌의 기단을 놓고 가운데 태실 4칸,좌우에 익실 각각 6칸 씩을 두어 모두 16칸의 건물을 조성하였으며,익실 양끝에 툇간을 덧붙여서 동월랑과 서월랑 5칸씩을 연결하였다


상월대에 면하고 있는 깊이 방향으로는 맨 앞 1칸을 퇴(退)로 개방하였고 그 뒤로 매 칸마다 판문 두 짝씩을 달아 안에서 열게 하였다.물론 가운데 칸은 밖에서 여닫을 수 있다.문 내부에는 각 실의 구분이 없이 탁 트인 2칸 깊이의 공간이 형성되었으며,그 안쪽을 각 신실로 분절하여 신위를 모신 감실을 마련하였다.한편,동서 월랑은 그 평면 구성상 차이가 있다.즉, 동월랑은 남쪽 방향으로 4칸을 개방하고 익실과 연결된 1칸만 3면을 둘러 막아 퇴쪽으로 문을 낸 반면 서월랑은 5칸 모두 벽으로 둘러막고 가운데 칸에만 판문 두 짝을 달았다


영녕전 건물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두리기둥의 열(列)과 태실 및 좌우 익실의 세 부분으로 구분된 거대한 지붕 면에 의하여 간결한 공포 형식인 초익공을 얹어 거대한 지붕을 받쳤고 가운데 계단(泰階)의 소맷돌과 문설주 양옆에는 태극 문양을 조각하였다.홑처마에 맞배 지붕 건물이며,지붕 마루는 양성을 하여 취두와 용두,잡상을 얹었다.전체적으로 정전 건물과 유사한 점이 많으나,정전 뒷면이 모든 기둥을 벽 속에 숨긴데 비해 영녕전 뒷면은 두리기둥을 노출 시켜서 벽을 분절하고 있다
*이덕수 지음 '新궁궐기행'중에서*

 

종묘영녕전(宗廟永寧殿)


보물 제821호
서울 종로구 훈정동 2-1 종묘 


종묘는 조선시대 왕·왕비·공신 등의 신주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그 중 영녕전은 종묘의 일부로 정전의 서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영녕전을 짓게 된 동기는 시간이 흐르고 죽은 왕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건물을 늘리거나 새로 지어야 할 필요 때문이었다. 이 건물은 세종 3년(1421) 정종의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지은 것으로, 태조의 4대조와 정전에서 계속 모실 수 없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옮겨 모신 곳이다.


현재 영녕전에는 가운데 4개의 방을 양쪽 옆에 딸린 방들보다 높게 꾸미고, 각 방에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탁조, 환조와 왕비들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그리고 서쪽 5번째 방부터 16번째 방까지 각각 정종과 왕비, 문종과 왕비, 단종과 왕비, 덕종과 왕비, 예종과 왕비, 인종과 왕비, 명종과 왕비, 원종과 왕비, 경종과 왕비, 진종과 왕비, 장조와 왕비, 의민황태자(영친왕)와 태자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17세기 중기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이 건물은 제사를 드리는 곳이라는 목적에 맞도록 구조와 장식·색 등이 간결하고 장중한 느낌을 주도록 만들었다. 일부 구조에서는 옛 방식을 따라 입구에 널문을 달고 발을 쳤으며, 건물 안쪽 방 사이에는 담벽을 치지 않고 발을 늘여 나누어 놓았다. 신위를 모시는 집으로 옛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문화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문화재청자료*

 

 *영녕전 동문으로 향하는 길

 

 

 

 *영녕전 동문 앞의 전하판위와 세자판위 찬막단도 보인다

 

 

 

 *영녕전 하월대의 박석과 차일 고리

 

 

 

 *영녕전의 지붕

 

 

 

 *영녕전의 뒷면

정전에서는 뒷면 기둥을 모두 벽속에 숨겼으나 영녕전에서는 노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