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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전남 구례 본문

☆~ 풍경소리/전 남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전남 구례

푸른새벽* 2007. 4. 12. 00:07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효대(孝臺)로 이어지는 각황전 뒤쪽의 계단길은 퍽 운치 있다.송림에 둘러싸인 효대에서는 특히 지리산의 청아한 산수를 감상할 수 있는데 특이한 모습의 석탑과 석등이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이라고 불리는 이 탑은 기본적으로 이중기단을 갖춘 삼층석탑의 기본형을 따르고 있으나 상층기단에 해당하는 부분에 독립된 네 마리의 사자를 각 귀퉁이에 앉히고 그 대각선 중앙에 합장한 스님상을 세웠다.이러한 독특한 형태 때문에 사사자삼층석탑이라 불린다


삼층석탑 앞에 있는 석등 역시 사사자삼층석탑 못지않게 특이하다.길쭉한 네모의 배례석을 놓고 화사석을 받치는 간주석(기둥 세 개)안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모습의 인물상을 배치하였다.차를 공양하는 모습이라고도 한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인물상은 화엄사를 창건했다는 연기조사(緣起祖師)라고 하고 사사자삼층석탑의 스님상은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한다.효심이 깊었던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공양하는 자신의 모습을 석등의 형태로 조각하도록 했다는 것이다.효대라는 이름도 대각국사 의천이 이러한 전설을 인정하고 시를 읊었던 데에서 나왔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삼층석탑 안의 스님상은 남성적이다.탑의 양식으로 보아도 신라 진흥왕 때의 연기조사가 세웠으리라고는 믿기지 않는다.연기조사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후대에 어떤 제자가 석탑을 세웠으리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다


특수한 이형 석탑은 기본형 석탑과는 달리 특수해진 부분으로 말미암아 자칫 전체의 균형과 조화가 깨지기 쉬운데
이 탑은 삼층석탑의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서 각 부재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 매우 아름답다


높직한 하층기단 중석에는 한 면에 각각 세 구의 안상을 마련하고 그 안에 천인상을 양각하고 있다.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며 꽃을 공양하는 등 갖가지 모습으로써 불세계의 화려함을 나타내고 있다


상층기단에서는 앞서 말한 대로 귀퉁이마다 사자를 배치하여 석탑을 받게 하였다.네 마리의 사자는 표정과 자세 또한 각기 다르게 표현하였는데,이는 인간사의 희노애락을 나타낸 듯하다


아래윗부분에 별도로 앙련과 복련을 마련한 사장상과 달리 가운데 서 있는 스님상은 머리가 갑석에 붙지 않았다.얼굴의 인상이나 몸에 걸친 가사,균정한 체구 등이 돋보인다


상층기단 갑석 위의 탑신부는 일반 석탑과 같은 형식이다.1층 몸돌 네 면에 각각 문짝을 모각하였고,남향한 정면 좌우에 인왕상,양 측면에 사천왕을 각 2구씩 그리고 북면에는 보살상 2구를 각기 부조하였다 .지붕돌받침은 5단으로 만들었으며,지붕돌의 평박한 낙수면이나 경쾌하게 들린 네 귀 등은 영락없는 통일신라 전성기의 탑 모습과 닮았다


상륜부는 노반석 위에 복발만이 남아 있다


삼층석탑 양 옆에 파란 불두화가 한아름 피면 앞에 서 있는 석등의 공양상이 자아내는 표정과 더불어 숭고한 불세계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장엄하다.비록 전설이지만 연기조사의 효행과 신앙심이 퍽 잘 어우러져 있다


석탑의 건립년대는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이따금 불국사 다보탑의 수법이나 우수성과 더불어 이야기되곤 하는데,신라시대의 사사자석탑으로는 유일한 예이다.높이는 5.5m이며,국보 제35호로 지정돼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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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자삼층석탑은 다른 탑과 구별되는 매우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절의 중심이 아닌 외곽에 세워져 배치상으로도 특이하다.기본적으로는 이중기단과 탑신 사이에 네 마리의 사자가 있는 구조로 네 마리 사자가 탑신부를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우선 기단에는 한 면에 각기 세 구씩의 천인상이 천의를 흩날리며 배치되어 있는데 제각기 다른 자세와 지물을 보여주고 있으며 매우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상층기단의 네 모서리에는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네 마리의 사자를 배치하고 중앙에 인물상을 배치하였다


그러나 인물상은 탑신덮개돌의 아랫면과 닿아 있지 않아 결과적으로는 탑신부는 네 마리 사자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
네 마리 사자는 암수로 각각 두 마리씩 표현하였으며 모습도 제각기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연화사자좌(蓮花獅子座)로 마련된 기단 위에 3중의 탑신과 지붕돌이 있다.1층 탑신에는 사방 중앙에 문 모양이 조각되었으며 좌우로 각각 신장상을 새겨놓았다.즉 서쪽에 두 금강역사상,남.북측에 사천왕상,동측에 제석과 범천 등사방의 문을 중심으로 천부의 모든 신장상이 등장하여 부처님의 사리가 있을 1층 탑신을 지키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 탑의 남쪽에 있는 공양석등이다.석등은 탑을 향하여 꿇어앉은 인물 위로 화사석(火舍石)이 있는 형태이다


설화에 의하면 이 석등의 주인공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緣起)스님이며 탑 상층기단에 있는 스님상은 연기스님의 어머니로 출가한 비구니의 모습이라고 한다.이는 효심이 지극한 연기스님이 어머니를 위하여 차를 공양하는 모습으로 이 곳을 효대(孝臺)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설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탑 몸돌을 받치는 기단 모서리에 네 마리 사자를 배치함으로써 탑신은 부처님의 전신,즉 몸체가 되는 것이고 그 몸체에서 진리의 설법이 나옴으로써 그 자체가 불법이 되는 것이다.말하자면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에서 장대한 『화엄경』이 비로소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진신이 머물러 있는 탑의 기단 모서리에 사자를 넣어 사자좌 위에 탑이 서 있는 모습은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에 그치지 않고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다.이러한 형식의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창안되어 금강산 금장암지 사사자석탑,충북 월악산 빈신사지사사자석탑,강원도 홍천 괘석리 사사자석탑 등 전국 각지에 세워졌다


이러한 사사자석탑의 공통점은 사자를 배치한 중앙에 조각상이 등장 한다는 점이며 금강산 금장암지사사자석탑의 경우 탑 앞에 탑을 공양하고 서있는 인물석 등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화엄사사사자석탑과 건립 의도가 동일하다고 보여진다.특히 사자빈신사지의 사사자석탑은 절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입법계품」에 붙타가 설법하기 전 사자빈신삼매(獅子頻迅三昧)에 드는 모습에서 근거하여 세워졌다
*강우방.신용철 지음 '탑' 중에서*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35호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지리산 자락에 있는 화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세운 절로, 호남 제일의 사찰답게 많은 부속 건물과 화엄사 각황전앞석등(국보 제12호), 화엄사 동오층석탑(보물 제132호), 화엄사 서오층석탑(보물 제133호), 화엄사 원통전전사자탑(보물 제300호) 등의 중요한 유물들이 전해온다. 탑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절 서북쪽의 높은 대지에 석등과 마주보고 서 있으며,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천인상(天人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악기와 꽃을 받치고 춤추며 찬미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장 주목되는 위층 기단은 암수 네 마리의 사자를 각 모퉁이에 기둥삼아 세워 놓은 구조로, 모두 앞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다. 사자들에 에워싸여 있는 중앙에는 합장한 채 서있는 스님상이 있는데 이는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전하며, 바로 앞 석등의 탑을 향해 꿇어앉아 있는 스님상은 석등을 이고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한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 모양을 본떠 새기고, 양 옆으로 인왕상(仁王像), 사천왕상(四天王像), 보살상을 조각해 두었다. 평평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이 있으며,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이 남아있다.


각 부분의 조각이 뛰어나며, 지붕돌에서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위층 기단의 사자조각은 탑 구성의 한 역할을 하고 있어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異形)석탑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