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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각황전(華嚴寺覺皇殿).전남 구례 본문

☆~ 풍경소리/전 남

구례 화엄사각황전(華嚴寺覺皇殿).전남 구례

푸른새벽* 2007. 4. 8. 23:40

 

 

 

 

 

 

 

 

 

 

 


화엄사각황전(華嚴寺覺皇殿)


화엄사 대웅전에서 시작된 석축이 직각으로 꺾여 이어진 곳에,
현존하는 우리나라 불전 가운데 가장 큰 규모에 속하는 각황전이 서 있다
거대한 규모이면서도 안정된 비례에 엄격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위엄과 기품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빼어난 건축이다
본디 이름이 장륙전(丈六殿)이었던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인 숙종 25년(1699) 공사를 시작하여
4년 만에 완공되었으며,
공사의 마무리와 더불어 숙종으로부터 '각황전(覺皇殿)'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고
사격(寺格)또한 더욱 높아져 선교 양종 대가람이 되었다
현재 국보 제67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7칸 측면 5칸짜리 중층 팔작지붕 다포집으로 바깥에서 보기에는 중층의 건물이지만
내부는 툭 터진 통층(通層)으로 되었다
내부에 있는 15개의 높은 기둥이 기본틀을 이루고
여기에 1층의 바깥기둥과 2층의 변주(邊柱)가 부가된 구조이다


정면은 가운데 세 칸이 가장 넓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좁게 하였으며,측면은 다섯 칸으로
다른 건무에 비해 공간이 넓은 편이며,주존불을 가운데 칸에 모심으로써
앞뒤 두 칸을 회랑처럼 이용했다


천창은 우물천장이나 그 주변을 경사지게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가 드문 수법이다
2층 벽은 창호로 처리해 내부에 조명을 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복잡한 공포구조가 처마 밑을 꽉 채우고 있어 매우 화려하다


현재 각황전이 유명한 것은 그 건물의 아름다움과 규모 때문이지만,
예전에 각황전,곧 장륙전이 유명했던 것은 이 전각 벽면을 돌에다 새긴 화엄경으로 장식했기 때문이었다


"의상대사가 화엄십찰을 세우면서
화엄사에 3층으로 된 장륙전을 건립하고 사방 벽을 화엄경을 새긴 돌판으로 둘렀다"는 기록이
『봉성지(鳳城誌)』에 있으나,
발견된 석경 조각들로 볼 때 시대적으로 의상대사가 모두 새겼다고 볼 수는 없다
화엄석경은 임진왜란 때 크게 불타 당시 그 파편이 수만 점에 이르렀다고 하나
현재는 약 1500여 점 정도가 남아 있다
그 파편들은 각황전 중앙에 길게 설치된 불단 밑에 보관되어 왔으나,
얼마 전에 전체를 탁본하고 대웅전 옆의 영전으로 옮겼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화엄사각황전(華嚴寺覺皇殿)


국보 제67호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화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시대에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 큰절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린 것을 인조 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각황전터에는 3층의 장륙전이 있었고 사방의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만여점이 넘는 조각들만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장륙전 건물을 다시 지었으며, ‘각황전’이란 이름은 임금(숙종)이 지어 현판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돌기단 위에 앞면 7칸·옆면 5칸 규모로 지은 2층 집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라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건물 안쪽은 위·아래층이 트인 통층으로 3여래불상과 4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인데, 벽쪽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경사지게 처리하였다.


화엄사 각황전은 건물이 매우 웅장하며 건축기법도 뛰어나 우수한 건축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