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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사자탑(華嚴寺獅子塔.원통전 앞).전남 구례 본문

☆~ 풍경소리/전 남

구례 화엄사 사자탑(華嚴寺獅子塔.원통전 앞).전남 구례

푸른새벽* 2007. 4. 11. 00:09

 

 

 

 

 

 

 

 
화엄사 사자탑(華嚴寺獅子塔.원통전 앞)


상층기단의 귀퉁이가 네 마리의 사자로 장식되어 사사자삼층석탑을 연상시킨다
2층 기단 위에 탑신을 얹고 있는 모습이
이행이라 해도 석탑이라 단정할 만큼 모습이 완전한 것이 아니어서 석탑형 건조물,
흔히 노주(露柱)라고 불린다
석탑이 아니라면 어떤 뜻의 신앙대상물이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외형을 살펴보면,
여러 개의 장대석으로 구성된 방형의 지대석 위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하층기단 중석을 얹었으며
그 위에 갑석을 마련하고 복련 좌대에 올라앉은 네 마리의 사자를 귀퉁이에 장식하여
상층기단을 삼았다
사사자삼층석탑의 사자들과 마찬가지로 머리에는 복련 좌대와 대칭되는 앙련을 이고,
상면에 복련을 장식한 갑석을 놓았으며,그 위에 탑신부를 모시고 있다
두 마리는 입을 벌리고, 또 두마리는 입을 다물고 있다


높직한 탑신의 각 면에 네모난 궤를 두른 다음 신장상을 한 구씩 얕게 조각하였다
탑신 위에도 한 매의 갑석을 놓았는데,
아래쪽에 앙련이 새겨졌으며 그 위에도 반구형의 돌출 석재가 있다
석탑으로 단정할 수 없는 이유가 이 점이다


어찌 됐든 전체적인 수법은 사사자삼층석탑의 선례를 따른 것으로 보고 있으며,
조각의 세련됨이 선례에 미치지 못하여 조성년대를 사사자삼층석탑 보다 훨씬 뒤인
9세기 무렵으로 추정하고 있다
높이가 3m에 이르고,보물 제300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화엄사원통전전사자탑(華嚴寺圓通殿前獅子塔)


보물 제300호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화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화엄종을 널리 알리던 절로, 창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승려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화엄사상의 구현을 이루어 왔다. 신라 후기에는 승려 도선(道詵)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고, 고려 문종 때에는 전라도 및 경상도에서 이 절에 매년 곡물을 바치도록 허락해 주어 일주문 밖에 큰 창고를 짓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7년 만에 여러 건물들을 다시 세웠으며, 이후 여러 번의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탑은 절 안의 원통전 앞에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독특한 석탑으로, 네 마리의 사자가 길쭉하고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절에서는 보통 노주(露柱)라고 부르는데, 무엇으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며, 불사리를 모셔놓은 것이라 하기도 하고, 불가의 공양대(拱養臺)로 쓰였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탑을 받치는 역할을 하는 기단(基壇)은 2단으로, 아래층 기단은 무늬없는 석재로 구성된 소박한 모습이다. 이 탑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인 위층 기단은 각 모서리에 사자상을 놓은 모습이다. 사자들은 연꽃받침 위에 앉아 연꽃이 조각된 돌을 머리에 이고 있다. 탑신(塔身)에는 직육면체 모양의 몸돌이 있다. 몸돌의 각 면에는 직사각형의 테두리를 둘렀으며, 그 안에 신장상(神將像)을 조각하였다. 몸돌 위에는 1장의 판돌이 있는데, 밑면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반구형의 돌이 솟아 있다.


위층 기단을 네 마리의 사자를 이용하여 만든 것은 이곳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을 모방한 것이나, 조각수법은 이에 못미처 이보다 훨씬 뒤인 9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