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서산 보원사지(普願寺址).충남 서산 본문

☆~ 절집.절터/충 남

서산 보원사지(普願寺址).충남 서산

푸른새벽* 2007. 4. 14. 23:15

 




 




 




 




 







 

 




 







 

 




 







 

 

보원사터(普願寺址)

 

사적 제316호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05

 

가까이에 있는 백제 시대의 서산 마애삼존불상의 본사라고도 하고,한때 고란사라는 이름이었다고도 하나 의 내력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만 개울을 사이에 두고 펼쳐진 퍽 널찍한 절터에 당간지주와 오층석탑,고려 초기의 국사였던 법인국사의 부도와 부도비 등이 있어 고려 시대에는 꽤 번성했던 절이었음을 짐작할 따름이다.치원이 지은 『당대천복사 고사주 번경대덕 법정화상전』(唐大薦福寺故寺主번經大德法藏和尙傳)에는 일신라 화엄 10찰의 하나로 되어 있다.그러나 조선 중기 때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미 이름이 나와 있지 않으니 그 전에 폐사가 되어 버린 듯하다.일대에 아흔아홉 절이 있었는데 백암사라는 절이 들어서자 모두 불이 나 버렸다는 이야기만  전설처럼 전할 뿐이다.


근처에 보원마을이 있었지만 1970년에 이 일대가 '삼화목장'에 들어감에 따라 마을 주민들을 모두 이주시켜서 지금은 깊숙한 산 속에 한갖진 절터만 남아 있다.


찻길에서 오십보 남짓이면 당간지주가 늠름하게 서 있어 절터의 수문장 노릇을 하고 있다.안쪽으로 거의 일직선상에 산중의 절터로서는 키가 큰 고려 시대의 오층탑이 수려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고 안쪽으로 석조와 법인국사부도,그 부도비와 건물 자리의 기둥초석들이 넓은 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유물들은 모두 각각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서로 길게 누워 있는 보원사터는 현재 사적 제 361호로 지정된 터 넓이만도 10만 2886㎡에 이른다.발굴 조사 때에 백제 때의 금동여래입상과 통일신라 시대의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되었고 기왓장들은 백제 때부터 고려 때의 것까지 다양하게 나왔다고 한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