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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서산 상왕산 개심사(象王山 開心寺).충남 서산 본문

☆~ 절집.절터/충 남

서산 상왕산 개심사(象王山 開心寺).충남 서산

푸른새벽* 2005. 12. 26. 23:35

 

 




 




 




 




 




 




 




 




 




 


 




 




 




 

 







 




 




 




 

 




 

 





 

 




 







 




 

 







 

 







 

 

 





 




 

 




 


상왕산 개심사(象王山 開心寺) 


개심사를 찾아가는 길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느낌을 맛보게 한다.먼저 갑자기 나타나는 드넓은 초원,이국적인 목장 지대에 한가로운 소떼들이 무척 낯설다.그러다 사과밭과 저수지를 지나노라면 소풍이라도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그러나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가다 보면 어느새 소나무와 잡목이 어우러진 산 속 깊숙히 잠겨 버려 숙연해진다.

 

주차장 밑에서 '세심동(洗心洞)' 표지를 만나면 마음을 닦고,개심사에 들어서는 마음을 열 준비를 해야 한다.홍송이 울창한 숲을 지나 돌 계단을 천천히 올라서 운산면 신창리 상왕산 기슭의 개심사에서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은,오솔길 모퉁이를 돌아서서 보이는 긴 네모꼴 연못이다.6월이면 수련이 소담스럽게 꽃줄기를 내밀고 있어서 마치 우리를 기다리느라고 목이 길어지니 듯하다.연못 왼쪽으로 경사진 흙길도 있지만 연못 가운데로 나무다리를 건너 층층계단을 오르는 것이 제 길이다.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사람의 손길이 가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것이개심사 경내의 분위기이면서 동시에 우리 나라 전통 정원이 지니는 미덕일 것이다.

 

자연석을 보기 좋게 다듬어 깐 돌계단을 오르면 안양루에 근대의 명필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이 전서체로 담백하게 쓴 '象王山 開心寺'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안양루는 강당으로,건물을 앉히기를 부러 살짝 동쪽으로 틀어서 개심사에서 가장 좋은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이다.여기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산중 깊숙히,그리고 높직이 올라와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또 안양루는 대웅전이 한눈에 드러나지 않도록 은근히 감싸 주는 구실을 한다.

 

안양루를 끼고 돌아 오른쪽에 있는 해탈문으로 들어서면 단정한 멋의 대웅보전이 안방마님과 같은 자태로 앉아 있다.앞에는 그리 크지 않은 오층석탑이 하나 있다.왼쪽에는 대들보가 자연스러운 심검당(尋劍堂)이 그 질박한 느낌 때문에 눈에 들어온다.해탈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으로 난 길로 좀더 가면 '무량수각'이라고 당호를 붙인 스님들이 기거하는 곳이 독립적으로 되어 있다.

 

거기서 더 가면 명부전이 있는데 목조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흙으로 빚어 채색한 조선 후기의 시왕상과 역사상이 모셔져 있다.제각기 자기 맡은 자리에서 개성 있는 모습으로 서거나 앉았는데 조선 후기에 중요해진 명부전의 역할을 물론,백성과 가까운 대왕들의 상이 무섭기보다는 아주 친근한 모습인 점이 그 시대 분위기의 특색을 잘 드러내어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194호로 지정되었다.행동거지가 조심스러운 대웅전 영역에서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어쩐지 편안한 마음이 된다.

 

전각이 많지 않은 개심사이지만 짜임새 있는 배치로 답답하지도 왜소해 보이지도 않는다.명부전 너머에 있는 산신각에 올라 보면 이런 경내 모습이 가장 잘 보인다.조선 초기의 건물인 대웅보전과 심검당은 갯미사의 역사성을 말해 주지만 창건은 백제 말기인 654년에 혜감(慧鑑)에 의하여 이루어졌다.처음 이름은 개원사(開元寺)였는데 1350년에 처능(處能)이 중창하면서 개심사로 바꾸었다.그 뒤 1475년에 다시 중창하였는데 대웅보전과 심검당은 그 무렵에 지은 건물이다.1740년에 건물들을 또 고쳐 지었으며 지금 모습은 1955년에 전체적으로 상한 곳은 고치고 단청도 새로 한 것이 남아 있다.40년 묵은 모습이라도 그런대로 세월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이 절에는 큰 괘불화가 전해 내려온다.조선 영조 48년(1772)에 제작된 이 괘불화는 삼베 바탕에 그려졌으며 길이는 10.1m,폭이 5.87m나 되는 거대한 그림이다.석가모니의 영산회상 장면을 그린 것인데,화면을 꽉 채우는 석가모니상에 견주어 둘러싸고 있는 보살과 시중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작다.이 괘불화는 영조 시대 문화 절정기의 산물로서,녹색과 연자빛,붉은빛이 어우러져 밝고 깨끗하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