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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연곡사 서부도(鳶谷寺 西浮屠).전남 구례 본문

☆~ 풍경소리/전 남

구례 연곡사 서부도(鳶谷寺 西浮屠).전남 구례

푸른새벽* 2007. 6. 13. 23:33

 

 

 

 

 

 

연곡사 서부도(燕谷寺 西浮屠)

북부도에서 약 100m 내려온 경내의 서쪽에 있다.주인을 모르는 동부도.북부도처럼 경내에 놓인 위치로 따져 서부도라 불리고 있지만,서부도의 경우는 주인이 명확한,소요대사 부도비이다.몸돌 한 면에 '소요대사지탑 순치원년 경인'(逍遙大師之塔 順治六年庚寅)이라는 글씨가 두 줄로 뚜렷이 남아 있어 소요대사가 입적한 순치 5년(1648) 다음해인 순치 6년(1649)년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부도비를 별도로 세우지 않고 부도의 몸돌이나 다른 부분에 글자를 새기는 예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양상으로,서부도가 그런 예의 하나이다

소요대사 태능은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로 그 문하의 4대파 가운데 한파를 이룰 만큼 유명했다.그리고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연곡사를 크게 중창한 스님이다

부도는 팔각원당형으로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고 있으나 조각수법은 동부도나 북부도에 비해 둔중한 편이다.키도 조금 더 커서 3.6m이고,보물 제154호로 지정되어 있다

팔각지대석에 홈이 패어 있고 그 위에 하대석을 놓고 있다.팔각하대석 측면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으나,윗면에 곡선을 그린 흔적이 있다.그 위에 얹은 중대석은 가운데 부위가 각진 타원형이며,아래위 대칭으로 앙련과 복련이 조각된 독특한 모습이다.상대석은 팔각 앙련석인데,아래에 각형(角形)의 2단 받침이 있고,윗면에 호형(弧形)의 높은 굄이 있다

몸돌도 팔각이며,한 면에 문비를 모각하였고,다른 한 면에 글씨,나머지 여섯 면에는 따로 돌을 붙여 만든 것처럼 불룩하게 여섯 구의 신장상을 조각해놓았다.4구는 사천왕상,2구는 신장상으로 보이나 확실하지는 않다

지붕돌 역시 팔각인데,추녀 끝이 얇고 넓다.낙수면은 급겅사를 이루었고,귀퉁이는 귀꽃이 큼직하게 솟아 있다

상륜부는 온전한 편으로 앙화,두 줄의 횡대에 꽃무늬가 수놓인 복발,다시 그 위에 높직한 보개와 보주가 차례로 놓여 있다
북부도가 동부도를 충실히 모방한 것이라면,서부도는 동부도를 변형 모방한 셈인데,조선사람의 검소한 멋이 풍겨난다

그 밖에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부도 세 기가 주변에 흩어져 있고 70m정도 내려오면 의병대장 고광순의 순절비가 동백나무 숲에 서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연곡사서승탑(鳶谷寺西僧塔)

보물 제154호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산54-1 연곡사 

연곡사서승탑은 연곡사 서쪽에 있어서 ‘서승탑’이라고 하며, 소요대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승려의 사리를 두는 탑신을 중심으로 그 아래에 기단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얹었으며, 각 부분이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3단으로 나누어 각 단마다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그 위로 탑신을 받치도록 두툼한 괴임을 둔 점이 독특하다. 탑신의 몸돌은 한 면에만 문짝 모양을 새기고, 다른 곳에는 8부신중상을 돋을새김해 두었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큼지막하게 꽃장식을 얹어두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다.

연곡사에는 이외에도 2기의 승탑이 더 있는데, 그 승탑들에 비해 조형성은 떨어지지만 각 부분의 비례가 아름다운 작품이다. 탑신에 새겨진 기록을 통하여 조선시대 효종 원년(1650)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