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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후기

여행,그리고 기억 6

푸른새벽* 2007. 9. 1. 23:44

전남 강진

월출산 도갑사

도갑사는 3번을 다녀왔다

처음 도갑사에서 느꼈던 놀라운 경험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 였다

처음 도갑사에 가려고 마음 먹었던 것은

이 해탈문이 보고 싶어서였다

도갑사를 향하는 길목

흐드러진 벚꽃으로 정신마저 혼미해졌던 그 새벽녘

도갑사 해탈문에 기대서 고즈넉한 절집의 정취를 한껏 느꼈고

쉬엄쉬엄

절집 뒤편의 숲길을 따라 도선국사비를 보러갔었다

 

 

봄날 이른 아침의 숲길은 청량함 바로 그것이었다

내게 욕심이 있었던가

내게 원망의 마음이 있었던가

내게 집착이 있었던가...

푸른 숲길에 머릿속이 투명해진다

 

 

근사한 전각에 잘 모셔져 있는 도선국사비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커다란 거북이 등에 업힌(?) 도선국사비는

그야말로 거대했다

시력 좋지 않은 사람이 보았으면 오래된 책을 여러겹 겹쳐놓은 듯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겠다 

 

 

그 거대한 비석을 업고 있는 거북 또한 만만치 않게 크다

내 생각에는 비석을 업고 있는 거북이로는

나라안에서 제일 크지 않을까 싶었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사진을 찍고 뒤로 돌아가

두리뭉수리하고 편안한 뒤태도 보고

다시 쭈그리고 앉아서 살창 사이로 찬찬히 거북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목이 너무 아파요

이제 고개를 숙이고 싶어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다시 한 번 더

"목이 너무 아파요

이제 고개를 숙이고 싶어요"

 

환청인가

아니 

분명히 들었다

거북이가 내게 말을 한 것이다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떨어져 내리며 숨이 막혔고

전신은 와들와들 떨리고 가슴은 터져나갈 듯 했다

 

사진기고 책이고 가방이고 다 팽개치고

보호각의 창살을 잡은 채

그자리에 주저 앉아  한동안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몹시 힘들었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도와 부도비를 보았음에도

이런 경험은 없었다

 

월출산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던 등산객들의 소란함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반나절을 그대로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거북이를 살펴보았다

정면에서 약간 왼쪽으로  치우쳐 한껏 목을 쳐들고 있는 거북이는

그렇게 몇 백년을 견뎌왔을 것 아닌가

정말 목이 아플것 같았다  

이걸 어째,이걸 어째

정말 이걸 어째...

 

그리고 또 얼만큼의 시간을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보호각의 창살이 없었다면

거북의 목을 안아 주고도 싶었다

 

봄 햇살이 뜨거워질 시간 

휘청휘청한 발걸음을 옮겨 그 곳을 내려오면서도

뒤통수를 잡아 채인 듯 내내 뒤가 돌아보였다

 

그러고

다음해에 그 거북이가 보고싶어 다시 찾았다

무슨 소리?

여전히 무심하게 그 거북이는 거대한 비석을 업고 있었고

거북의 목소리는 다시 들을 수 없었다

또 그 다음해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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