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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지주의 건립 본문
당간지주의 건립
당간은 통일신라 초기부터 사찰의 입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조형물이었다.통일신라 초기에 건립되어 있었던 규모가 비교적 큰 사찰뿐만 아니라 초창되는 사찰에서 새롭게 등장하여 가람의 한 구성 요소로 자리 잡게 된다.당간과 당간지주는 그 이후부터 고려시대까지 꾸준하게 가람에 세워지는 조형물이 되었다.통일신라 말기에 선종에 유입되어 성행하면서 선종 본찰(本刹)이나 일부 선종계열 사찰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찰에서 건립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이러한 당간과 당간지주는 중국 불교의 영향으로 건립되기 시작하였지만 고대 한국 불교만이 가지는 독특한 성격으로 동양의 다른 불교국보다 월등하게 성행하였다
당간과 당간지주는 그 구조물들이 간단하지만 다른 불교 조형물에 비하여 당간을 높게 세웠기 때문에 건축기술적인 측면에서도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였을 것이다.당간지주는 석주형의 길다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특히 석당간의 하단부는 동일석(同一石)으로 치석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원석(原石)을 채취하는 데에도 많은 정성과 노력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현재 당간과 당간지주를 세우는 기간이나 제작 과정을 알려주는 기록은 없다.다만 중초사지 당간지주의 명문이 돌의 채석이나 제작 기간,시주자와 관련된 약간의 사실을 전하고 있을 따름이다.이중에서 당간지주의 건립 기간과 관련된 내용만을 보면 826년 8월 6일 중초사 동쪽에서 쪼개진 2개의 돌을 채석하였다고 한다.아마도 당간과 당간지주를 세우기로 발원한 후 두 지주석을 마련하기 위하여 미리부터 천공작업(穿孔作業) 후 쐐기목을 박아놓았던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8월 28일 쪼개진 2개의 돌을 완벽하게 분리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어 원석을 채취한 후 9월 1일 당간지주가 세워질 지점에 옮겨진 것을 보인다. 즉,두 지주는 평면 사각 석주형(石住形)으로 길게 마련되므로 원석도 긴 형태로 채취한 후 세워질 지점으로 옮긴 다음 본격적으로 치석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그래서 중초사지 당간지주는 다음해인 827년 2월 30일 완성되었다고 한다
당간과 당간지주가 완공되었음을 의미하는 날짜일 것이다.즉,원석을 채취한 후 6개월 정도의 작업 기간이 소요되었음을 의미하는 날짜일 것이다.다만 작업 과정에서 몇 명의 인원이 투입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여기서 당간을 세우는 것이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하여 많은 기간이 요구되지만 당간지주는 다른 석조 조형물에 비하여 구조적으로 간단하기 때문에 그리 오랜 공사 기간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필자는 당간과 당간지주를 건립하는 과정을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이 추정하고 있다
먼저 당간을 세우기 위해서는 사찰 가람에서의 위치를 정하여 시주자들을 모집하고 공사에 참여할 장인들을 선정하여 세부적인 계획을 세운 다음 설계도를 작성하였을 것이다.그런 다음 당간과 당간지주를 세우는데 소용될 원석과 철을 구하고
책임자의 건립 계획에 따라 돌을 치석하고 철통을 만들기 위한 주조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기단과 간대,지주부의 치석이 끝나면 당간지주를 세울 지점을 깊게 파서 두 지주를 세우고 큰 돌이나 잡석으로 견고하게 고정한 다음 흙을 메운다.그리고 두 지주 하단부에 기단과 간대석을 결구한다.구 지주를 견고하게 세운 이후에는 주변에 흙을 쌓고,비계목을 올린다.그리고 당간지주 주변에 석당간이나 철통을 올릴 준비를 한다
목당간(木幢竿)일 경우에는 당간부를 치목하여 결구한 후 곧바로 세워 간구나 간공에 간을 연결하여 고정한다.석당간(石幢竿)일 경우에는 하단부 당간을 간대석과 당간지주에 고정시킨 후 비계목을 올리고 상부 당간을 하나씩 올려 결구해 나간다
철당간(鐵幢竿)일 경우에는 철심(鐵心)을 세우고 하단부 철통을 간대석에 단단하게 고정한 후 비계목을 세우고 하단부터 철통의 순서에 따라 결구해 올린다.철당간은 각각의 철통을 철심에 연결하는 별도의 작업을 하며 간공과 간구 높이에서는 간을 연결하여 견고하게 고정하는 작업도 병행한다.당간부는 나무,돌,철통을 끼워 맞춰 올라가면서 당간을 높이 세웠을 것이다.당간과 당간지주의 건립 과정에서 당간을 세우는 과정이 가장 힘든 작업이고 오랜 기간이 걸렸을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당간지주를 보면 간구와 간공을 마련하는 수법이 다양하다.간공과 간구의 시공 수법에 따라 당간부를 세우는 방법이 조금씩 달랐을 것이며 당간부의 재료도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첫 번째로 간구만을 마련한 지주는 두 지주를 세운 다음 당간을 세워 간구에 간(杆)을 끼워 고정하였을 것이다.당간부는 간대석과 간구,즉 상하 2곳에서만 고정된다.이러한 당간부 고정 방법은 고려 초기에 건립된 당간지주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당간부 고정 방법으로 보아 목당간이나 철당간일 경우에 많이 활용된 수법으로 보인다.두 번째로는 관통된 간공과 간구를 마련한 지주는 두 지주를 세우고,당간을 세우면서 한쪽 방향에서 관통된 간공으로 간을 끼워 고정하였을 것이다.따라서 목당간이 세워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세 번째로 관통되지 않은 간공과 간구를 마련한 지주이다.이러한 지주는 통일신라와 고려초기에 건립된 지주들에서 많이 확인되는데 당간과 당간지주를 건립하는데 가장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었을 것이다.이들의 당간부는 두 지주를 세워놓고 당간공 상단부가 경사지게 깎인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당간을 세운 후 간을 위에서 아래로 끼워 고정하였음도 알 수 있다.즉, 두 지주를 세워놓고 당간을 올리면서 간을 지주부에 끼운 다음 ,당간이 견고하게 지탱될 수 있도록 고정 시설을 마무리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이러한 시공 수법은 특히 석당간이나 철당간을 세울 경우 많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간을 모두 올리고 나서는 꼭대기에 장엄적인 성격이 강한 장식을 올린다.그리고 당간과 당간지주 주변에 설치된 비계목이나 흙을 제거한 후 도르래에 걸친 줄을 활용하여 번이나 당을 꼭대기에 달아 휘날리도록 걸었다.이때 번이나 당을 거는 것을 기념하여 법회를 열었을 것이며,많은 사람들은 예불을 올리면서 공덕을 쌓았을 것이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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