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충주 돌아보기.창동리탑.마애불.여래입상 본문

답사.여행 후기

충주 돌아보기.창동리탑.마애불.여래입상

푸른새벽* 2008. 7. 29. 23:25

원평리를 떠나 창동리마애불과 탑을 찾으러 가는 길은 낯이 익었다

언젠가 겨울 탑평리칠층탑을 찾아가던 그 강변을 따라 가는 길이 었다

그 때 보았던 강은 겨울색이 깊어 느낌조차  유장했었는데

비의 계절 지금은 속내 감춘 회색의 강

충주를 돌아 흐르는 이 강을 달천이라 부르는지...

비 잔뜩 묻어 있는 강을 따라 달리는 고즈넉함이 좋다

 

 

네비가 가르쳐 준 대로 따라 와보니 창동리마애불이 있다는 곳엔

마애불은 보이지 않고 붉은 벽돌담에 달린 철제 대문만 비에 젖어 있었다

마애불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있는 주차장근처 어디에도 마애불이 있을 만한 장소가 없으니

필경 저 대문 안 계단을 올라가면 어느곳엔가 마애불과 탑이 있을 것이다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철제대문은 다행히 잠겨 있지는 않았다

 

 

철제대문 안 쪽에는 밖에서 보던 것 과는 전혀 다르게

울창한 숲과 근래에 지은 것이 분명한 정자와 뾰족뾰족 날 선 창백한 탑이 있었고

그 아래로는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마애불은 계단을 내려가야 만날 수 있으려나...

 

 

 

땀이 아니라 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습하고 더운 날씨 탓에 가만히 있어도 온 몸을 적시며 흘러내리는데

일찍 나선 답사길에 아침도 거른지라 잠시 내려가는 계단에도 다리가 떨리며 식은 땀까지 가세하니

조심해야 한다

혹여 넘어져 다치면 그야말로 오늘답사는 꽝일테니...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계단조차 비에 젖어 미끄럽다 

내려다 보이는 계단 끝에 닿은 잿빛의 강은 녹색의 깊이만 언뜻 내비칠 뿐

마애불은 그림자도 없다

 

 

알루미늄 난간이 막아 선 계단 끝

이제는 강인데  마애불은 어디에...

얼핏 난간 위 절벽을 쳐다보았다

 

 

이곳에...

창동리마애불이 있었다

잿빛의 강을 살짝 비껴 바라보고 계신 창동리마애불

 

 

창동리마애불(倉洞里磨崖佛)

붉은 줄무늬가 흘러내린 듯한 자연 암벽 위에 새겨진 마애불

바위가 만들어낸 울퉁불퉁 가로줄이 마치 여래상의 어깨와 몸통을 둘로 나눠 놓은 것 같이 거칠지만

얕게 새겨진 마애불의 표정은 잿빛 강이 그러하듯 고요하기만 하다

 

이 마애불은 정면의 모습과 살짝 비껴 옆에서 바라 본 모습이 너무도 다르다

살짝 비껴 보이는 모습이 훨씬 운치가 있다

 

 

마애불을 만났으니 이젠 오층탑을 찾아야 한다

계단을 올라와 아무리 살펴도 탑은 보이지 않는다

 

 

이 탑은 아니다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뾰족하게 날이 선 탑은 아닐 것이다

상층기단과 몸돌에 새겨진 빽빽한 장식에서 강원도 어느 폐사지를 지키던 탑을 떠올렸다

마음을 바쳐 오로지 불심하나로 정성을 다했을 장인의 손길이 아닌 

겉모습만 흉내낸 이 탑에서 

여백의 美 조차 거부하는 현대인의 건조한 정서를 읽는다

 

 

창동리마애불이 있는 곳 언덕비탈 숲속에서 한참을 오르내리며 탑을 찾다찾다 포기하고

철제대문을 나와 다음의 목적지를 향해 50m쯤 진행했을 때

불쑥 튀어 나오듯 창동리탑의 안내판이 나타났다

마애불과 탑은 이렇게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던 것을

마애불 주변만 헤집고 다니다 지레 지치고 말았으니...

 

 

 

창동리오층석탑(創洞里五層石塔)

1층몸돌과 3층의 몸돌이 붉은 빛이다

이 탑은 원래 민가의 뒷뜰에 있던 것을 100여m 남쪽으로 옮겨 복원해 놓은 것 이라한다

제 자리가 아닌 곳에서 오랜세월 견디어 온 흔적이 군데군데 하얀꽃처럼 피어있다  

탑이 아픈 것은 아닐까

탑을 가운데 두고 주변엔 조립식건물과 주차장이 바짝 붙어있으니

소음과 공해에 탑인들 편할 날이 있겠는가

 

 

창동리약사여래입상(倉洞里藥師如來立像)

비오는 주말 아침

애써 마애불과 탑을 찾으러 왔던 내가 받은 보너스

생각지도 않았었다

이 납작하고 까무잡잡한 약사여래를 만나리라고는...

두 손으로 받쳐든 저것은 분명 약합이겠지

상처받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고쳐주신다는 약사여래시니까

 

 

약사여래의 발은 비에 촉촉히 젖어 있었다

연화문이 새겨진 대좌도 젖어 있었다

 

 

 

소나기가 지나간 자리에서 만난 창동리탑과 여래상

아직 물기 걷히지 않은 탑과 마애불은 주변의 혼잡하고 소란스러운 가운데도

평정심 잃지 않고 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창동리를 떠나려 재촉하는 발길이 무거워진다

 

  

왈칵 밀려드는 무거움을 잠시 잊게 했던 나무

탱나자무였다

빽빽하게 돋아난 험상궂은 가시와는 달리 탱자나무 새순은 여리디 여린 연둣빛이다

새 봄 연노란빛 앙징맞은 탱자꽃이 이렇듯 야물고 단단한 열매를 남겼다

 

 

소나기의 흔적이 보인다

달랑달랑 소나기는 이렇게 탱자나무에 제 그림자를 남겨 놓았다

 

 

 

 

비오는 날 / 마종기

 

구름이 구름을 만나면

큰 소리를 내듯이

아,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치면서

그렇게 만나고 싶다, 당신을

 

비가 부르는 노래의 높고 낮음을

나는 같이 따라 부를 수가 없지만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로 젖는다고

당신은 눈부시게 내게 알려준다.

 

탱자나무에 남겨진 소나기의 흔적에서 마종기님의 詩를 떠 올리며

다음의 답사처인 추평리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