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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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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후기

충주 돌아보기.추평리탑.억정사대지국사비

푸른새벽* 2008. 7. 29. 23:38

까무룩하게 졸음이 밀려온다

괴산 답사를 마치고 충분한 휴식도 없이 충주를 찾게 되었으니,

아침거른데다 창동리탑 찾느라 헤매고 다녔으니

꼬실꼬실하고 적당히 서늘한 자동차안 이니... 졸음이 밀려올 만도 하다

하지만 안되지

마음과 몸을 다시 추스린다

하늘은 무거운 잿빛이다

 

 

추평리를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요즘은 곳곳의 문화유적을 알리는 갈색의 표지판이 무척 상세하다

그래서 답사길에서 만나는 갈색의 표지판은 언제나 반갑다

 

갈색의 표지판이 가르키는대로 찾아 든 추평리

먹구름 가득히 산봉우리를 덮고 있는 추평리마을은 적막함 ,바로 그것이었다

 

 

자동차에서 내려 작은 마을길을 조금 들어가 바로 만났던 안내판

탑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안내판 바로 뒤나 옆에는 분명 탑이 있어야 하는데...

 

 

 

질퍽한 밭고랑과 둔덕 근처를 헤매고 다니며 돌아 보아도 탑은 보이질 않았다

아니 없었다

마을사람에게 물어봐야 하려나...

 

 

탑의 안내판이 있는 옆쪽으로 보이는 집

이 곳에 도착했을 때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문이 열려 있다

저 곳에 가서 탑의 위치를 물어 봐야겠다

 

 

염치불구하고 조심스레 열린 대문을 통해 마당으로 들어서니

집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며 마당의 머위를 뜯어 챙기는 내 나이와 비슷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집 주인인 듯.

공손히 인사하고 탑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탑이 있었지요

있기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거기 탑 안내판 옆쪽 밭 두렁에 검정 비닐로 둘러쳐 놓은 것 보셨지요?

그것이 탑을 몽땅 뜯어서 쌓아 놓은 거예요"

 

그러면 언제쯤 다시 탑을 세운다는 말을 들었냐 물었더니

 

"몰라요

우리가 뭐 아나요

탑을 다시 세우고 그 근처에는 공원을 만든다고 하던데 우리는 그런거 원하지도 않았고

마을사람 누구도 공원 만든다고 좋아하는 사람없고 나 역시 좋을 거 하나도 없어요 "

그러면서

생각났다는 듯  그동안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들을 소나기처럼 쏟아낸다

 

"탑 옆에 산다는 이유로

충주의 무슨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몇 번이고 우리가게에 전화해서 자꾸 물어보길래

전화만 하지 말고 직접 와서 이야기 하라 그랬더니

학생들 잔뜩 데리고 와서 탑을 뜯는 공사가 끝날 때까지 화장실과 마당을 사용하게 해 달래서

어차피 빈 집 누구라도 필요하다면 거절 할것도 없고

또 좋은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지 싶어 

허락을 했는데

세상에~

탑 뜯는 공사 끝났다는 연락받고 와보니 집이 말이 아니었어요

아 글쎄

한달 동안 화장실이고 사랑채고 편하게 썼으면 인사는 그만두더라도 청소는 했었어야지

화장실과 사랑채와 마당이 발을 디딜 수가 없게 쓰레기로 어질러져 있어 

그거 치우는데 하루 왼종일 걸렸어요

여기는 쓰레기 치울 곳도 마땅찮아 그 많은 쓰레기를 박스 세 개에 나눠 담아 내 차로 실어다 버렸어요

어쩌면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허락했으면 고맙다는 인사는 못할 망정

쓰레기는 치웠어야지요

내가 펄펄 뛰며 교수 찾아가 따지겠다 했더니 우리집 양반이 말렸어요

그냥 좋은일 했다 생각하고 참으라구요

 

이제 볼일 끝났다고 전화 한번이 없네요

교수라는 사람이 그러니 학생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탑을 다시 세울 때 또 전화가 오거나 그 교수라는 사람이 여기 다시오면 그땐 가만 안있을 겁니다 "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있던 내가 얼굴이 뜨뜻해져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문화를,문화유산을 공부하는 것이나 문화재를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이나 모두가

크게,넓게 보면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사람의 염치를 가르치는 학문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철저히 가르쳐야 하고,가장 소중하게 느껴져야 하는 것이

사람사는 도리,사람이 해야할 도리와 하면 안되는 도리인 염치다

그 염치를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작금의 세상 돌아가는 것에 인문학은 실종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는 있었지만...

 

추평리탑의 해체복원을 담당한 교수님은

맡은 일에,앞으로 맡아 할 일에 너무 충실하시다보니

인문학의 기본은 아예 잊으셨나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말이 많았지요? 생각할 수록 화가나서 ...

이곳을 찾아 오신 분들 중에 그래도 말이 통할 것 같아 대고말고 수다를 떨었네요.

이해해 주세요~ "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내가 그런 경우를 당했대도 그럴 것이다

 

 

소나기처럼 이야기를 쏟아내던 아주머니가 선대부터 살았던 집이라고 했다

낡고 볼품없는 집이지만 구석구석 시아버님의 손길이 닿아 있는 곳이라 각별하다면서

지금은 충주시내에 살고 있지만 불편한 곳 손 봐서 다시 들어와 살겠다고 했다

오늘은 휴일이라 봄에 심었던 채소들 챙기려 왔다던 그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고 나와

다시 탑이 있었다던 곳을 한 번 더...

 

 

탑은 낱낱이 해체되어 검은비닐로 둘러쳐져 있었다

언제쯤이나 이 탑이 복원되어 제 자리를 찾아  다시 설 수 있을까...

 

 

 

해체되기 전 추평리탑의 모습

(사진은 빌려온 것이다)

 

 

추평리에서 생각지도 않게 오래 있었다

정작 탑은 만나지 못하고 얼굴만 뜨거워져 돌아오는 길은 피로가 극에 달해있었다

연이은 답사에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눈이 가물가물 한것이 이제 답사고뭐고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예전 어른들이 말씀하셨지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노는 것도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도 체력이 받쳐주어야 한다는 것을

젊었을 때 놀아라는 것으로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추평리에서 다시 충주시내로 향하는 그 길에서 만났던 예의 그 갈색의 표지판

경종대왕태실과 억정사대지국사비를 안내한다

피곤하더라도 어차피 지나치는 길이니 자동찻길에서 멀지 않은 것 같아 잠시 들러보기로 했다

 

억정사대지국사비는 엄정면 괴동리 마을길을 조금 들어간 낮으막한 언덕 사과밭 사이에 있었다

 

 

억정사대지국사비(億政寺大智國師碑)는

터 만 남은 예전의 억정사(億政寺)에 전해오는 비(碑)로,
고려의 승려인 대지국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비문은 박의중이 짓고, 승려인 선진이 글씨를 썼으며, 혜공이 새겼다는데

이 비를 만드는데 무려 4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억정사대지국사비는 보물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

 

글씨에 대해선 아는 것도 없고,잘 읽을 줄도 모르며,쓸 줄은 더욱 모르는지라

그냥 휘~둘러보고...

 

근처에 경종대왕태실이 있다지만 이제 다 싫다

아무생각이 없고 그저 한 숨 푹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어딜가나 충주엔 사과밭이 있었다

어딜가나 충주엔 비가 묻어 있었다

 

억정사대지국사비를 건성건성 살피고 돌아가는 길

피곤이 뒤엉켜 하얗게 된 머릿속엔 오로지 한가지 생각 뿐

어서 돌아가 쉬고 싶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