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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환벽당(環碧堂).전남 담양 본문

☆~ 풍경소리/전 남

담양 환벽당(環碧堂).전남 담양

푸른새벽* 2008. 8. 4. 14:40

 

 

 

 

 

 

 

 

 

 

 

 

 

 

환벽당(環碧堂)


환벽당은 비스듬한 비탈에 자연석 축대를 쌓고 지은 남향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동쪽 2칸은 마루로 되어 있고 서쪽 2칸이 방이며 그 앞에 반 칸짜리 툇마루가 깔려 있다
원래는 정각 형태였는데 후대에 중건할 때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집 마루에서는 남쪽의 무등산과 창계천이 잘 내려다 보인다
원래 푸른 대숲은 없고 집 뒤 비탈과 앞쪽 축대 아래의 커다란 배롱나무가 인상적이다
그 밖에도 집 뒤에는 왕벗나무가 있고,옆에는 모과나무가 있으며,또 축대 아래에 느티나무와 벽오동나무 들이 있다


축대 아래에는 세 단으로 된 화계(花階)가 있고 그 밑에 네모진 연못이 있다
그것들은 환벽당 마루에서 직접 바라볼 수 없는 위치에 있고 또 그 아래 넓은 터가 김윤제의 집 본채가 있었던 곳이니
별당인 환벽당의 뜰이 아니라 본채에 딸린 후원의 일부였을 것이다


한편 환벽당 아래 창계천 가에는 큰 바위가 하나 있다
김윤제와 그의 손님들이 낚시를 즐겼다는 조대(釣臺)인데 지금은 그 위에 기념비가 서 있다
그 옆에는 지금도 늙은 소나무들이 기울어져 있어서 조대쌍송(釣臺雙松)을 노래했던 옛사람들의 흥취를 상기시킨다
여기에서 건너편을 보면 별뫼 봉우리가 삿갓처럼 볼록하게 보인다
조대 앞이 바로 정철이 목욕하다가 김윤제를 만났다는 용소이다


예전에 환벽당 주인 김윤제와 서하당 주인 김성원은 창계천 위에 다리를 놓고 서로 오가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김윤제는 광주에서 태어나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한 후 홍문관 교리를 거쳐 나주 목사로 있다가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인 충효리로 돌아왔다
환벽당은 그가 집 뒤에 지은 별당으로 그는 이곳에서 자연을 벗삼아 한가로이 지내며 후진을 키웠다
그러나 이곳은 송강 정철이 27세로 과거에 급제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머물면서 공부했던 곳으로 더 유명해서
송강정,식영정과 함께 정송강 유적으로 불린다


어느 더운 여름날,김윤제는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다가 집 아래 용소에서 용이 놀고 있는 꿈을 꾸었다
그가 잠을 깨고 가 보니 한 소년이 멱을 감고 있었다
그 소년이 바로 정철이었다
그때 정철은 식영정 옆 지실마을에 살고 있었는데,순천 처가에 가 있는 형 정소를 만나러 가던 길에 용소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던 것이다


김윤제는 이런 인연으로 만난 정철을 환벽당에서 지내게 하면서 공부를 시키고
외손녀 사위로 삼았으며,관계로 나아갈 때까지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다
정철은 이곳에서 머물며 기대승,김인후 등 고명한 학자들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임억령에게서 시를 배웠으며 여러 사람을 사귀었다
그의 「성산별곡」에는 환벽당 주변의 산수경관이 담겨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