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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월남사지삼층석탑(月南寺址三層石塔).전남 강진 본문

☆~ 풍경소리/전 남

강진 월남사지삼층석탑(月南寺址三層石塔).전남 강진

푸른새벽* 2009. 2. 17. 14:01

 

 

 

 

 

 

 

 

 

 

 

 

 

 

 

 

 

 

 

 

 

 

 

 

 

 

 월남사지삼층석탑(月南寺址三層石塔)


월출산 국립공원을 알리는 팻말이 선 곳에서 13번 국도로부터 갈라져 들어가는 월남리 마을길은 넓은 차밭을 지나 산 쪽으로 이어진다
차밭이 생기기 전에 이  곳은 대밭이 무성하게 우거진 마을이었다


월출산의 화려한 능선이 정면으로 올려다보이는 탑전마을에 이르면 훤칠하게 잘생긴 탑 하나가 돌담과 대나무,동백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높이는 7.4m이고 기단의 한 변 길이가 2m가량 된다
단층 기단과 1층 및 2층의 몸돌,각 층의 지붕돌 등 탑 전체가 여러 개의 작은 석재를 맞춰서 이루어졌는데
기단의 폭이 1층 지붕돌 폭보다 좁고 1층 몸돌이 훌쩍 높기 때문에 늘씬한 느낌을 준다
2층과 3층의 몸돌은 높이는 같고 폭만 좁아졌다
3층의 몸돌만이 한 개의 돌로 되어 있고,1층과 2층은 네 모서리의 우주와 면석이 각각 다른 돌로 되어 있다
꼭대기에 몸돌과 같은 네모진 석재가 얹히고 그 위에 노반.복발.앙화로 이루어진 상륜부가 있다


지붕돌은 시루떡처럼 편편하고 넓적하며 네 모서리가 약간씩 들렸다
월남사터 삼층석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지붕돌 아래위의 모습이다
1층과 2층 지붕돌 아래의 3단 받침은 가운데 단만 각이 졌고 아래위의 두 단은 둥그스름해서 정림사터 오층석탑의 지붕돌 받침을 연상시킨다
3층 지붕돌 받침은 2단이다
또 지붕돌의 윗면은 보통 볼 수 있는 경사면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이 탑을 전탑의 양식을 모방한 모전석탑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데
여러 개의 작은 석재들을 쌓아서 만들기는 했지만 그 하나하나가 전돌 모양은 아니다


이 탑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좁은 단층 기단과 높은 1층 몸돌,그리고 지붕돌 받침의 형식에서
백제 정림사터 오층석탑의 양식을 이었으며 보물 제298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 노인의 말에 따르면 1900년대 초까지 무위사 스님들이 1년에 한 번씩 이 탑을 비단으로 감싸고서 주위를 돌며 불공을 드렸고

이밖에도 다른 탑이 한 기 더 있었다고 한다
없어진 탑의 부재들은 마을 안 이곳저곳의 집에 흩어져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康津 月南寺址 三層石塔)


보물 제298호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54 

 
월남사터에 남아있는 삼층석탑으로, 단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바닥돌 위에 기둥 모양의 돌

을 세우고 그 사이를 판돌로 채운 뒤 넓적한 맨윗돌을 얹어 조성하였다. 탑신부의 1층 몸돌은 매우 높으며, 2층 몸돌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였으며, 밑의 받침은 3단을 두었다. 지붕돌의 윗면은 전탑에서와 같이 계단식 층단을 이루었고, 추녀는

넓게 수평의 직선을 그리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탑신의 모든 층을 같은 수법으로 조성하였고 위로 오를수록 낮은 체감률을 보

인다. 탑의 머리부분에는 받침 위에 꾸밈을 위해 얹은 석재 하나가 남아 있다.


이 탑은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백제 양식을 많이 따르고 있다. 기단 및 탑신의 각 층을 별도의 돌로 조성한 것이나 1

층의 지붕돌이 목탑에서처럼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는 양식 등이 그러한 특징이 된다.


대표적인 백제탑이라 할 수 있는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과 비교해볼 수 있으며, 전라도 지역에서는 규모나 양식으로 매우

중요한 석탑이라 할 수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