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강진 월남사지진각국사비(月南寺址眞覺國師碑).전남 강진 본문

☆~ 풍경소리/전 남

강진 월남사지진각국사비(月南寺址眞覺國師碑).전남 강진

푸른새벽* 2009. 2. 17. 14:04

 

 

 

 

 

 

 

 

 

 

 

 

 

 

 

 

 월남사지진각국사비(月南寺址眞覺國師碑)

 

월남사터삼층석탑이 있는 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아주 용맹하게 생긴 커다란 거북 위에 얹힌 비석이 있다

월남사를 창건한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을 기리는 비이다

진각국사는 고려 고종 때 살았으며 보조국사 지눌의 뒤를 이어

조계산 수선사(修禪社.지금의 송광사에 있던 수행결사)의 제2세 사주가 된 사람이다

비석의 위쪽은 깨어져 없어졌는데,대석과 거북의 기세 ,남아 있는 비석의 폭으로 보아

매우 웅장한 비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깨어져 나간  비석 조각이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석과 거북은 한 돌로 만든 것이며 남아 있는 비의 높이는 2.12m.

전체 높이는 3.58m이다

 

편마암 비석이 풍상에 닳아서 맨눈으로 글자를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글자의 앞뒤로 빽빽이 적혀 있고 뒷면 아래쪽에 희미한 문양대도 보인다

비의 앞면에 적힌 것은 진각국사의 행적이다

고려의 대문장가였던 이규보가 비문을 지었는데,남아 있는 비면이 마멸되어 다 읽어 낼 수 없지만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과 『동문선』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비의 뒷면에는 비를 세운 경위와 진각국사의 제자 118명의 이름 드이 기록되 음기(陰記)가 적혀 있는데

이것은 이규보의 비문과 별도로 최자가 지은 것이다

음기에 따르면 이 비는 고종 37년(1250)에 최씨 무인정권의 제2대 집정인 최우(崔瑀)와

그의 아들 최항(崔抗)의 각별한 관심에 따라 이곳 월남사에 세워졌다

최이는 진각국사을 몹시 존경하여 자기의 두 아들을 그 제자로 보냈다

최항은 그 두 아들 가운데 하나로 나중에 환속하여 최씨 정권의 3대 집정이 되었다

 

만들어졌던 시대를 반영하듯 무인풍의 호걸스러움을 보이는 거북과 비는

지금 보물 제313호로 지정되어 보호각 안에 들어 있다

그 전에는 오랫동안 잡초와 칡넝쿨에 뒤덮여 있었다고 한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월남사지진각국사비(月南寺址眞覺國師碑)


보물 제313호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월남사는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창건 이후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진각국사의 성은 최씨이고 이름은 혜심(慧諶)으로 2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다. 출가 후 보조선사 밑에서 수도를 하였고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대선사(大禪師)가 되었으며, 고종 21년(1234)에 57세로 입적하였다. 월남사 터에 서 있는 이 비는 절을 창건한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린 형태이다. 받침돌인 거북은 입에 구슬을 문 상태로 긴 목을 빼어들고 네 발을 단단히 짚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강렬하고 사실적이다. 발톱에서 보이는 현실성이나 목과 머리조각의 세부표현 또한 전체적인 균형과 잘 어우러져 한층 돋보인다. 비몸은 원래 매우 컸다고 하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아랫부분만 남아 있으며,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고종 때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