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강릉 대창리 당간지주(江陵大昌里 幢竿支柱).강원 강릉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강릉 대창리 당간지주(江陵大昌里 幢竿支柱).강원 강릉

푸른새벽* 2008. 8. 17. 02:57

 





 





 

 





 





 









 





 

 









 





 





 

 





 









 

 

강릉 대창리 당간지주(江陵大昌里 幢竿支柱)


당간지주는 강릉 시외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동부시장에서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약 80m 정도 가면 좁은 잔디밭 위에 서 있다.당간지주가 서있는 위치에서 가까운 지점에 기와 조각과 석조여래입상,석탑재 등이 출토된 바 있어 이들과 관련된 절터였음은 분명하다.그러나 절 이름을 비롯하여 구체적인 연혁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두 지주는 원위치로 보이는 곳에 남북으로 마주 서있으며,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기단은 결실된 것으로 보이는데,지주 하단부의 치석 수법으로 보아 원래부터 지대석과 면석을 갖춘 전형적인 기단이 마련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지주 하단부는 치석하지 않고 거칠게 하였고,간대석 또한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다.지주부는 치석 시 생긴 정자국이 약하게 남아 있어 각 면이 고르지 못하지만 지주의 너비와 폭이 커서 안정된 느낌을 준다.지주는 아무런 조식이 없으며,다만 외면 외곽 모서리를 깎았으며 정상부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가면서 평평하다가 호선을 형성하도록 둥글게 마무리 하였다.당간을 고정하는 간을 끼우는 홈도 간공은 시공하지 않고 내면 꼭대기에 작은 간구만을 마련하였다.


이와 같이 당간지주는 전체적으로 규모가 커서 웅장하고 정연한 인상을 주지만 각 면을 대강 다듬어 정교하지 못한 측면을 보이고 있다.이러한 치석 수법의 당간지주는 강릉 일대에 건립된 굴산사지나 강릉 수문리 당간지주 등에서도 볼 수 있다.그리고 지주부는 상부로 올라가면서 약간씩 좁아지고,정상부는 부드러운 호형을 그리고 있다.이러한 측면들은 통일신라 말기에 건립된 당간지주와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


당간지주가 서있는 강릉시 옥천동 일대에는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무진사(無盡寺),용지사(龍池寺),아슬라사(阿瑟羅寺) 등 절 이름이 확실치는 않지만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이 일대에서는 석불과 석탑재 등이 출토되기도 하였는데,이중에서 당간지주의 건립 시기와 관련하여 석탑재가 주목된다.석탑재는 기단 면석과 탑신석,옥개석 등으로 현재 대창리 당간지주가 서있는 지점을 중심으로 100미터 이내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기단  면석은 석탑 상층기단의 한 면으로 우주와 탱주를 세우고 그 사이에 1구씩 입상의 사천왕상을 새겼다.1층 탑신석도 한 면으로 설법인(設法印)을 취하고 있는 여래좌상을 조각하였다.1층 탑신석의 한 면이 별석으로 마련된 것으로 보아 대형의 석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이와 같이 기단부와 1층 탑신석에 장엄상을 조각하는 것은 통일신라 말기 석탑에서 성행하였다.특히 사천왕상과 여래좌상이 부조상으로 돋을새김이 강하고

사천왕상의 갑옷과 투구의 표현 등으로 보아 9세기 전반경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한편 강릉 대창리 당간지주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선림원터,서림사터,향성사터,진전사터,보현사,삼화사 등이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있었다.특히 785년 김주원이 왕위쟁탈전에서 밀려나 강릉으로 내려온 이후 강력한 호족세력이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까지 명주와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해 나갔다.이에 따라 호족들과 밀착된 다수의 사찰이 창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강릉 대창리 당간지주가 소속한 사찰도 이 지역에서 성장한 호족들의 후원으로 창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강릉 대창리 당간지주의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이 당간지주는 9세기 전반경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강릉 대창리 당간지주(江陵大昌里 幢竿支柱)

 

보물 제82호
강원 강릉시 옥천동 333

 

강릉 시내의 도로변 논 속에 남아 있으며

주변에서 기와조각 등이 출토되어 이 주변이 절터였음을 알 수 있을 뿐 구체적으로 전하는 기록은 없다.


지금의 자리가 원래의 위치이며, 현재 1m 간격을 두고 두 지주가 남북으로 마주 서 있다. 지주 사이의 깃대를 받치던 받침이나 기단부(基壇部)가 남아 있지 않으므로 원래의 모습을 파악할 수는 없다. 바닥부분에 직사각형의 돌을 놓은 것으로 보아 기단부도 직사각형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꼭대기 부분은 안에서 바깥쪽으로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안쪽 윗부분 중앙에는 깃대를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진 구멍이 하나 있다. 이 당간지주는 전체적으로 조각한 흔적이 없는 소박하고 간결한 모습이다.
*문화재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