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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갑사 철당간(甲寺 鐵幢竿).충남 공주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공주 갑사 철당간(甲寺 鐵幢竿).충남 공주

푸른새벽* 2008. 7. 7. 07:30

 

 





 





 





 





 





 





 





 









 

 









 





 

 

갑사 철당간(甲寺 鐵幢竿)

 

갑사 철당간은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작은 개울을 건너 조성된 넓은 공간 입구에 세워져 있다.즉,원래의 갑사는 경내를 이곳으로 진입하도록 되어 있었을 것이다.갑사 철당간은 기단과 간대석,두 지주,철당간까지 비교적 완연하게 잘 남아있다.


기단은 지대석과 면석 등을 활용하여 정연하게 결구하였다.지대석은 사각형이며,기단은 2매의 석재를 앞뒤에서 결구하고,이를 견고하게 고정하기 위하여 상면 좌우측에 홈을 시공하였다.기단 면석부에 안상을 음조(陰彫)하였는데 전후면에 3구,두 측면에는 2구씩 조식하였다.안상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상단부에 4개의 첨형(尖形) 무늬가 솟아나와 좌우대칭을 이루도록 하였다.안상의 조식 수법이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 초기까지 성행한 수법을 보이고 있다.기단 상부는 갑석형(甲石形)으로 마련하여 기단은 전체적으로 석탑의 하층기단과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그리고 부재가 연결되는 부위에 나비장을 끼워 견고하게 고정되도록 하였다.두 지주 사이에는 간대석을 사각형 대석으로 마련하였다.간대석은 지주와 밀착시켜 견고하게 결구하였으며,원좌를 시공하였다.또한 철당간이 세워진 점으로 보아 간대석 상면 중앙에 원공이 시공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두 지주는 별다른 장식이 없는 소박한평면 사각 석주형이다.각 면이 고르게 다듬어지기는 하였지만 자세히 간찰하면 정자국이 많이 남아있다.
정상부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가면서 비교적 유려한 호선을 형성하도록 치석하였다.이와 같이 지주는 전체적으로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인상을 주고 있다.이러한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성행한 치석 수법이다.그런데 두 지주를 자세히 관찰하면 지주의 규모와 치석 수법이 약간 다름을 알 수 있다.당간을 고정하는 간(杆)은 간구와 간공을 시공하여 끼우도록 하였다.그리고 간구는 지주 내면 꼭대기에 사각형으로 마련하였으며,서쪽 지주는 사각형의 간공을 시공하였다.그런데 동쪽 지주는 간구는 마련되었지만 지주 중간부에 간공은 시공되지 않았다.이것은 동쪽지주가 최초 건립 이후 파괴되거나 보수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첨가되었음을 알려준다.


철당간은 간대석 위에 세우고 5번째 철통을 철띠로 3번 돌려 굵은 철 막대기에 고정시킨 후 간구에 연결하여 서도록 하였다.현재는 간구 부위가 시멘트로 가득 채워져 있다.그리고 철당간은 24단이 남아 있는데,1893년 7월 25일 벼락을 맞아 상단부 4단이 부러졌다고 한다.따라서 원래는 28단 이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각각의 철통은 소켓 연결 방법으로 연결되었다.즉,철통은 상부에서 하부 철통으로 끼워 고정하는 방법이다.이것은 철당간이 처음부터 정교하게 설계되고 주조(鑄造)되었음을 알 수 있다.한편 철당간의 철통내부는 17단까지 시멘트가 가득 채워진 것으로 밝혀졌다.그리고 그 위로는 내부에 철주(鐵柱)가 수직방향으로 세워져 있고 환봉이 중간마다 옆으로 각 철통에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즉,목탑의 심주와 같이 중심기둥이 있고,그 좌우로 작은 연결쇠를 각각의 철통에 연결하여 높은 철당간을 하나하나 올렸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철당간은 여러 번 중수를 거친 것으로 보인다.그것은 각각의 철통마다 해당하는 단을 표시하는 숫자가 양각되어 있는데 숫자가 거꾸로 표시되어 상하가 뒤바뀐 단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갑사 철당간은 대적전을 중심한 지역에 고대의 초석들이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갑사는 679년(문무왕 19)에 창건이나 중창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그런데 당간과 당간지주의 양식은 이보다 늦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지주부의 치석 수법이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성행한 수법을 보이고 있으며 두 지주의 간공 수법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그리고 갑사의 지리적인 위치도 경주로부터 상당한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당간지주가 전국적으로 성행한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한편 서쪽지주는 최초 건립시의 지주이나 동쪽지주는 후대에 새롭게 보강된 것으로 보이며 철당간은 건립 이후 여러 번 보수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갑사 철당간(甲寺 鐵幢竿)

 

보물 제256호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58


연천봉의 서쪽 계곡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갑사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꽤 너른 공터를 앞에 두고 키가 훤칠한 당간이 서 있다.여느 절터에서나 당간은 없고 쓸모를 잃어버린 지주만을 보는 것이 예사지만 갑사에서는 제대로 버티고 있는 간(竿)을 볼 수 있다.


갑사의 철 당간은 청주 시내 용두사터의 철 당간과 함께 오랜 내력을 지닌 것으로 석조 지주와 더불어 보물 제256호로 지정되어 있다.원래 28개의 철통이 이어져 있었는데 조선 말 고종 30년(1893)에 벼락으로 4개가 부러져 나갔다고 한다.예전에야 그것까지 갖추고 있지는 않다.깃발이라는 것도 사회적인 의미가 있을 때에야 걸릴 수 있을 터이니 요즈음의 세태가 그것을 알아줄 리도 없고,또 절집에서도 어찌하는 줄을 아는이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지름이 50cm 굵기인 철통이 24개 연결된 현재 길이는 15m로 어찌나 긴지 보통 카메라 렌즈에는 잘 담아지지 않아 사진 찍기에 애를 먹는다.


지주의 대석은 흙 속에 파묻힌 상태이다.위쪽에는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공(竿孔)이 양쪽으로 나 있어 철제 당간의 다섯째 마디 철통을 철띠로 세 번 둘러 단단하게 고정 시켰다.장식이 없이 소박하나 튼실하여 당간을 버티고 있는 지주는 기단석 면에 안상이 조각되어 있다.맨 위에서 바깥쪽 모서리는 모를 죽이고 활 모양을 내어 장식이 없는 가운데에도 유려한 곡선을 그려 맛을 냈다.그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의 것으로 여겨지는데 절에서는 문무왕 20년(680)에 건립했다고도 한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