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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당간지주(金山寺 幢竿支柱).전북 김제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김제 금산사 당간지주(金山寺 幢竿支柱).전북 김제

푸른새벽* 2008. 7. 6. 00:10

 

 





 









 

 





 





 









 

 









 

 





 

 금산사 당간지주(金山寺 幢竿支柱)

 

금산사 당간지주는 당간을 제외하고 지대석.기단부.간대석.지주부를 정연하게 갖추고 있다.따라서 금산사 당간지주는 미륵사지 당간지주와 함께 한국의 당간지주 형식과 양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일찍부터 주목되어 왔다.


현재 두 지주는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의 개울 건너에 배치되어 있다.당간지주는 사찰의 남북 중심축을 중심으로 동편에 자리하고 있으며,동서로 마주보고 있다.기단부는 먼저 자연석을 사각형으로 깔고,그 위에 긴 사각형 돌로 지대를 마련하여 단층의 기단을 올렸다.기단은 2매의 장방형 부재를 남북으로 결구하였다(211x138cm,높이 36cm),기단 면석부에는 좌우와 중앙부에 우주와 탱주를 모각하여 직사각 형태로 구획한 다음,그 안에 각각 2구씩의 안상을 앞뒤와 측면에 음조하였다.안상은 기단의 면석을 구획하여 중앙 상부를 중심으로 좌우로 호형(弧形)이 연속되어 대칭을 이루고 있는 첨두형(尖頭形)이다.안상은 호형의 끝 연결점이 가운데로 모이는 듯한 인상을 주도록 양끝에서 넓고 부드럽게 첨형이 가운데를 향하고 있다.이와 같이 안상은 날카로운 첨형이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어 금산사 경내의 석련대 하대석의 안상 음조 수법과 일치하고 있다.기단 상면은 2단의 괴임을 마련하여 두 지주를 받치도록 하였다.이러한 당간지주의 기단 수법은 석탑의 하층기단을 모방하여 정연한 기단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간대석은 두 지주 사이에 마련되었으며,상면에 원좌(지름 44cm)와 원공(지름 19cm)을 시공하였다.


두 지주는 동일한 치석 수법이다.지주부는 전후면과 외면 외곽에 윤곽대(輪廓帶.너비 9~11cm)를 돌렸으며,특히 외면 중앙에는 세로로 돌기대(너비 5cm)를 조각하여 장식적인 의장을 더하고 있다.지주 정상부에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가면서 유려한 호선을 그리고 있으며 그 중간에 1단의 굴곡을 주었다.특히 두 지주 내면 북쪽 편은 간대부에서 63cm 높이까지 약 2cm 정도의 두께로 깎았고 중앙부는 반원형의 홈을 마련하였는데,이것은 당간을 끼워 견고하게 고정하기 위한 흔적으로 보인다.


당간을 고정하기 위한 간은 지주 내면 꼭대기에 '∪'형의 작은 간구와 2개의 간공을 시공하여 끼우도록 하였다.하단부 간공(7x9cm, 깊이 7cm)은 원형으로 간대부에서 52cm 높이에,상단부 간공은 사각형으로 하단부 간공에서 116cm 되는 높이에 시공하였다.


금산사 당간지주는 지금까지 발굴이나 자세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따라서 당간지주의 형식과 양식으로 건립 시기를 추정하여야 하는데
경내에 남아 있는 방등계단.육각다층석탑.석련대.노주 등 대부분의 석조 유물들이 고려 초기에 건립되었다고 하여 당간지주도 경내의 석조 유물들과 동시대로 보려는 시각이 있다.그러나 이러한 편년은 다소 무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왜냐하면 당간지주의 형식과 양식이 통일신라시대의 특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으며 다른 석조물들이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이라 하여 모두 고려 초기로 편년하는 것은 견강부회적 논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산사 당간지주는 전체적인 외관이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에서처럼 정연하고 안정되며 세련된 인상을 준다.이점은 미륵사지 당간지주와도 일맥상통하고 있다.그러나 고려시대 당간지주들은 기단부가 약화되면서 지주 높이는 낮아지고 상대적으로 지주가 굵어지면서 외형이 둔중한 인상을 준다.한편 금산사 당간지주는 지대석과 기단부의 마련 수법이 정연하다.미륵사지 당간지주와 같이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하층 기단을 모방하여 기단부를 마련하였고 면석부에는 우주와 탱주로 구획한 다음 각 면에 2구씩 안상을 조식하였다.특히 면석부에 우주와 탱주를 깊게 모각하고 안상은 첨형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으며,여러 번 굴곡을 주면서도 꼭지점에서 일정하게 곡선을 형성하여 부드럽게 이어지는 선이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안상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또한 기단부 상면에 호각형으로 지주괴임을 두고 간대석에 원좌와 원공을 마련한 시공 수법도 주목된다.지주부는 상단부로 갈수록 폭과 넓이를 줄여 경쾌한 인상을 주고 있으며 내면을 제외한 나머지면 외곽에 일정한 폭으로 윤곽대를 돌리고,외면 중앙에는 2조의 세로띠인 돌기대를 장식하였다.이러한 지주부의 치석 수법이 고려시대 건립된 보원사지나 무량사 당간지주 등에서도 보이지만 이들은 간략화 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금산사 당간지주는 약화된 경향보다는 깊게 치석함으로써 장식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이러한 것으로 보아 금산사 당간지주는 경내에 있는 다른 석조 유물보다 빠른 9세기 말이나 10세기 초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그리고 전체적인 치석 수법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미륵사지 당간지주와 통하고 있어 미륵사지 당간지주를 계승하였거나 모방한 작으로 짐작된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금산사 당간지주(金山寺幢竿支柱)

 

보물 제28호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


금산사 당간지주는 장방형의 지대석과 기단,당간을 버티던 간대 등 각 구성 부분이 완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예다.


기단부의 정연한 조각 수법이나 두 지주의 3면에 새겨진 조각 등 각 부의 양식 수법으로 볼 때 현존하는 우리 나라 당간지주 가운데 가장 난숙한 격식을 갖추고 있다.다른 당간지주에서는 당간을 꿰어 고정시키는 홈을 보통 아래위 두 군데씩 두고 있지만 이 당간지주에는 상중하 세 군데 홈이 파여 있다.


안내판에는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되어 있다.그러나 금산사내의 다른 석조물들의 연대가 대체로 고려 초기의 것임에 비추어볼 때 양식 수법은 다소 앞설지라도 이 또한 고려 초기작이 아닌가 추정하는 이도 있다.보물 제 2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높이는 3.5m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