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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만복사지 당간지주(萬福寺址 幢竿支柱).전북 남원 본문

☆~당간지주/고려

남원 만복사지 당간지주(萬福寺址 幢竿支柱).전북 남원

푸른새벽* 2008. 8. 19. 23:07

 

 





 





 









 

 





 





 





 

 만복사지 당간지주(萬福寺址 幢竿支柱)


만복사지 당간지주는 현재 원위치로 추정되는 곳에서 동서로 서있다.지대석과 간대석은 확인할 수 없지만,발굴 보고서에 따르면 지하 3m까지 굴착하였으나 지주의 바닥은 노출되지 않았으며 다만 지주를 받치고자 쌓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할석(割石)과 천석(川石)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그 이상의 지하는 도로 붕괴 위험으로 실시하지 못하였다고 한다.따라서 지주 주변과 하단부에 할석과 천석을 채워 두 지주를 단단히 고정시켜 세웠음을 알 수 있고 지주 하단부의 치석 수법으로 보아 별도의 기단은 마련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두 지주는 아무런 조식이 없는 투박한 형식으로 정자국이 그대로 남아있고 치석 수법도 조잡하여 마치 평면 사각의 긴 석주(石柱)를 세워놓은 듯하다.다만 두 지주의 정상부는 외면으로 나가면서 직선에 가까운 완만한 사선을 그리도록 하였고 지주 모서리 부분을 약간 둥글게 깎았을 뿐이다.두 지주 중 동쪽지주가 높으며,꼭대기 부분을 뾰족하게 치석하여 동쪽과 서쪽의 지주는 치석 수법이 약간 다르다.


서쪽지주는 상하에 관통된 원형의 간공(지름 17cm)를 2개 마련하였으며 간구는 지주 내면 꼭대기에 '凹'형으로 시공하였다.동쪽지주는  지주 내면 상하에 관통되지 않은 원형의 간공 2개(간격 183cm,지름 18cm,깊이 29cm)를 마련하였고 지주 내면 상단부에는 '凹'형의 간구를 마련하여 간을 끼우도록 하였다.이와 같이 한쪽지주는 관통된 간공을 시공하고 다른 쪽 지주는 관통되지 않은 간공을 시공한 것은 가운데에 당간을 세운 후에 서쪽지주에서 간을 끼워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배려임을 알 수 있다.


만복사지 당간지주는 발굴 조사에서 창건 시부터 기단부를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이것은 당간지주가 고려시대에 건립되었음을 방증한다.또한 두 지주는 아무런 조식이 없는 투박한 형식으로 정자국이 그대로 남아있고 치석 수법도 조잡하여 평면 사각의 긴 석주를 깎아 세워놓은 듯하다.이러한 당간지주의 치석 수법은 일반적으로 고려시대에 나타나는 양식이다.한편 당간지주는  사지(寺址)에 남아있는 석조물들과 함께 만복사가 가람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면서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만복사지 당간지주는 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만복사지 당간지주는 보물 제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만복사지당간지주(萬福寺址幢竿支柱)


보물 제32호
전북 남원시 왕정동 537-1 


이 당간지주는 만복사터에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으며, 지주사이에 세웠던 깃대는 남아있지 않고 이를 고정시켰던 구멍이 세 군데에 뚫려 있다. 현재 아래부분과 기단이 땅속에 파묻혀 있어 그 이하의 구조는 알 수 없다.


두 지주 각 면이 고르지 못하여 전체적으로 투박하고 별다른 장식이 없으며, 전체적으로 생략화·단순화된 것으로 보아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