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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서산 보원사지당간지주(瑞山 普願寺址幢竿支柱).충남 서산 본문

☆~당간지주/고려

서산 보원사지당간지주(瑞山 普願寺址幢竿支柱).충남 서산

푸른새벽* 2008. 5. 17. 13:49

 

 

 

 

 

 

 

 

 

 

 

 

 

 

 

 

 

 

 

 

 

 

 

 

 

 

 

 

 

 

 

 

 

 

 

 

 

 

 

 

 

 

 

 

 

 

 

 

 

 

 

 

 

 

 

 

 

 

 

 

 

 

 

 

 

 

 

 

 

 

 

 

 

 

 

 

 

 

 

 

 

 

 

 

 

 

 

서산 보원사지당간지주(瑞山 普願寺址幢竿支柱)


보물 제103호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05,992


서산 보원사지당간지주(普願寺址幢竿支柱)는 경내로 들어가는 진입 공간에 배치되었는데,경내는 작은 개울을 건너 들어가도록 하였다.사찰의 진입 공간과 중심 공간이 물로 나누어져 있어,마치 사바세계와 불세계를 개울이 구분하고 있는 듯 하다.이와 같이 보원사지 당간지주는 사찰로 들어서는 입구에 배치되어 경계나 위상을 표시하는 기능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단은 결실되었으며,두 지주 사이에 간대석만 남아있다.지주 하단부의 치석수법으로 보아 미륵사지나 금산사 당간지주처럼 정연한 기단이 마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간대석 아래에는 작은 잡석을 깔아 받침으로 삼았으며,상면에는 이중의 원좌와 원공을 시공하였다.지주부는 동일한 치석 수법을 보이고 있는데,전후면과 외면 외곽은 일정한 너비로 윤곽대를 돌렸다.윤곽대는 지주 규모에 비하여 너비가넓은 편이다.외면 가운데에는 2조의 반원형 돋을대를 세로로 추가 장식하였다.정상부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가면서 유려한 호선을 형성하도록 치석하였으며,그 가운데에는 1단의 굴곡을 두어 장식적인 의장을 더하였다.간구는 지주 내면 꼭대기에 시공하였으며,간공은 사각형으로 지주 하부에 시공하였다.


이와 같이 보원사지 당간지주는 전체적으로 각 면을 고르게 다듬었을 뿐만 아니라 정연하고 세련된 치석 수법을 보인다.또한 지주부는 너비와 폭이 전체 높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아 날렵한 인상을 주고 있다.그리고 기단이 결실되기는 하였지만 정연한 결구 수법으로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특히 보원사는 법인국사 탄문(法印國師 坦文)이 하산한 시기를 전후하여 가람의 규모가 확장되었다.현재 남아있는 오층석탑이나 석조 등이 이 시기를 전후하여 건립되었을 것이다.


한편 보원사 법인국사탑(法印國師塔)은 975년 직후에 건립되었으며,탑비는 978년 건립되었다.이중에서 김정언(金廷彦)이 찬하여 건립된 「보원사 법인국사탑비普願寺 法印國師塔碑」에는 보원사에 서있던 당간지주와 관련된 내용이 전하고 있다.즉 "법당(法幢)을 중정(中庭)에 세우고 범패(梵旆)를 그 위에 걸어두니,바람에 흔들리고 태양에 빛나며 휘날렸다'고 한다.당시 당간지주가 지금과 같이 사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고,그 꼭대기에는 화려한 장엄물들이 걸려 있었음을 전하고 있다.또한 법인국사가 하산하면서 그 일행이 보원사에 도착하자 번개(幡蓋)가 구름처럼 날렸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로 보아 당간지주는「보원사 법인국사탑비普願寺 法印國師塔碑」가 세워지기 이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그리고 보원사지 당간지주는 고려 왕이나 왕실과 밀접한 관련을 가졌던 개경 지역 사찰에 건립된 당간지주들과 강한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특히 법인국사탑은 국가에서 직접 파견한 국공(國工)이 치석한 것으로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이러한 것으로 보아 당간지주도 중앙 정부에소속된 장인이 파견되어 치석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보원사터당간지주(普願寺址幢竿支柱)


절터를 향해 들어가다가 먼저 눈길을 잡아끄는 당간지주를 보게 된다.원래부터 그 자리에 천년을 변함없이 지켜, 지금은 보리밭 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데,4.2m의 늘씬한 자태를 자랑한다.전체적으로 조각이 화려하지 않지만 단순한 테두리를 둘러 멋과 힘을 둘 다 잃지 않았다.


맨 위쪽은 숙련된 솜씨로 4분원이 매끄럽게 그려져 있고,간을 잡는 구멍은 위와 아래 두 군데에, 양쪽에 마주보게 나 있어 전형적인모습을 보인다.당간을 받치는 간대(杆臺)가 보기 드물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데 2층 기대에 둥근 자리를 만들어 기둥이 안정되게 자리할 수 있도록 했다.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통일신라 시대의 유물로서 보물 제 103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